중국 증시 호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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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

중국 증시 호러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6. 30.

남편이 공무원이고 자신은 대학교 부교수인 중국인 장모씨. 예전에는 주식시장을 도박판이라며 멀리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광둥(廣東)성 주장(珠江)삼각주에서 공장을 운영하던 천모씨는 공장을 팔아 수백만위안의 현금을 들고 주식 투자에 나섰다. 베이징 대학가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주식시세를 쳐다보는 학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3개월 전 주식 투자에 나선 대학생 청모씨는 “진짜 주식시장을 모른다”면서 “어떤 종목을 살지 단지 다른 친구들을 따라할 뿐”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산시(陝西)성 싱핑(興平)시 난류(南留)촌에서는 830여가구 중 100가구가량이 주식시장에 발을 담갔다.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왕모 여사는 7만위안(약 1260만원)을 갖고 시작해 반년 만에 12만위안을 벌었다고 한다. 상승을 의미하는 빨간색으로 물든 주식 시세판을 바라보며 활짝 웃던 노인의 표정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중국 증시는 지난 1년 동안 이처럼 빈부격차, 지위고하,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개미(개인투자자)들을 끌어당겼다. 고된 노동 없이 돈을 벌 수 있는 주식이야말로 중국 ‘라오바이싱(老百姓·일반 국민)’들에게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중국의 주가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오르면서 경제여건에 비해 증시가 과열됐다는 거품론이 끊이지 않았지만 중국에선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대신 “중국에서 주식에 투자하려면 펀더멘털(경제 기초여건)을 잊으라”, “투자를 두려워한다면 이미 진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투기를 부추긴 전문가들도 있었다.

중국 증시의 활황은 정부와 언론, 금융기관의 합작품이다. 거품을 경고하는 이들에겐 중국 주가를 이해하려면 영도자들의 생각부터 읽으라는 면박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1억~2억명을 넘는 중국 개미들은 투자의 위험성을 얼마나 제대로 고지받았을까. 하루 벌어 하루 먹기 힘든 농민공들에게 주식 투자를 부추긴 책임은 누가 져야 하나. 경제 규모는 세계에서 두 번째라는데 주식시장은 너무 낙후된 것 아닌가. 경제 성장률이 떨어지면 투자 수익률도 떨어진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가. 많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대다수 중국 투자자들은 이를 애써 외면했다.



중국 증시_경향DB




최근 중국 증시에서 주가가 하루에만 7% 폭락하는 등 급격한 조정을 겪으면서 개미들이 아우성치고 있다. 그리스 사태가 스릴러라면 중국 증시는 호러쇼라고 외신은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여전히 증시 부양에 열중한다.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동시에 내리고 언론에선 폭등 후 폭락은 정상적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개미들이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지만 하소연할 곳은 없다.

앞으로라도 개미들에게 헛된 망상을 심어주는 일은 그만둬야 한다. 중국 정부는 과열된 증시를 연착륙시키고 개미들을 탈출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중국의 주가가 뛴다고 우리가 배 아파할 이유도 없고, 폭락한다고 동정할 필요조차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주가 폭락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파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지난 29일 베이징에서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협정문 서명식이 열렸다. 오전까지 자욱하게 끼었던 스모그도 오후 들어 돌연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서 걷혔다. 그리스 사태로 전 세계 증시가 침체되는 가운데 중국 증시는 주말을 틈타 발표된 기준금리와 지준율 동시인하라는 부양책에 힘입어 상승장으로 개장했다. 그러나 결국 하락세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중국 정부가 증시를 쥐락펴락해도 경기 사이클과 악재는 반영되기 마련이다. AIIB 협정문 서명으로 팡파르를 울리고 있는 한편에서 터져 나오는 중국 개미들의 한숨을 보면서 중국은 과연 어디에 서 있는지 헷갈리게 된다. 주식시장은 경제의 거울이라고 한다. 중국 증시가 중국의 온전하지 못한 자본주의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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