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식당의 대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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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중식당의 대약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1. 17.

중국에서 대기 줄이 가장 긴 식당 중 하나가 쥐치(局氣)다. 베이징에만 17개 분점이 있는데 입구마다 대기자용 의자가 수십개씩 놓여 있다. 한두 시간 대기는 기본이고, 사람이 너무 많아 두세 번씩 허탕 쳤다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이 식당은 옛 베이징거리를 재현한 인테리어와 전통 복장을 입은 종업원 등 복고풍 콘셉트를 내세웠다. 솔직히 음식이 대단히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 손님을 당기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인기 메뉴인 흑미 볶음밥은 연탄 모양으로 그릇에 담겨 서빙된다. 중국 전통 의상인 탕좡을 입은 종업원은 연탄 모양의 볶음밥에 식용 알코올을 뿌려 불쇼를 펼친다. ‘인증 샷’을 찍을지 여부까지 체크해 쇼 구성을 달리한다. 불쇼가 포함된 이 볶음밥의 가격은 5000원 정도다.

 

탕청샤오추(湯城小廚)는 5000~8000원짜리 탕 요리를 파는 중저가 식당이다. 조미료를 넣지 않고 4시간 이상 끓여 재료 본연의 맛에 충실한 탕을 내놓는다. 대추 오골계탕 같은 보양식이 주 메뉴지만 깔끔한 분위기 때문에 20대 고객들이 몰린다. 음식에는 소금을 전혀 넣지 않는다. 대신 테이블마다 놓여 있는 소금통에 ‘1~2회 누르면 싱겁게’ ‘3~4회는 보통’ 등 세심한 설명을 붙여놓았다.

 

딤섬으로 유명한 진딩쉬엔(金鼎軒)은 흰색과 검은색 젓가락, 두 벌씩 준다. 하나는 음식을 개인 접시로 덜어올 때 쓰고, 다른 하나는 음식을 먹을 때 쓰라는 배려다. 이 식당은 24시간 내내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중국식당들이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 맛, 위생, 분위기는 기본이고 세심한 서비스와 다양한 메뉴,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까지 갖췄다. 고급식당이 아니라 1만원 미만의 음식을 파는 중저가 식당들까지 이런 요소를 두루 갖추고 고객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정보기술(IT)까지 더해졌다. 테이블에 붙어 있는 QR코드를 스캔하고 간단한 인증 절차를 거치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주문, 결제가 가능하다. 대기표 아래 인쇄된 QR코드를 인식하면 스마트폰에 대기인수와 예상 소요시간이 표시되고, 차례가 되면 문자로 통지된다.

 

지난해 중국의 요식업 매출액은 4조위안(약 661조원)을 넘어섰다. 빠르게 규모가 커지고 있는데 한식당들은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전후로 하나둘씩 들어선 한식당은 교민과 유학생이 증가하고 드라마 <대장금>이 큰 인기를 끌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2008년에는 베이징에 있는 한식당이 200개에 달했다. 현재 베이징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식당은 60여곳이다.

 

한식당들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깨끗하고 친절하다. 그때만 해도 중국인들은 한식당의 세련된 인테리어와 서비스 수준을 신기해했지만 이제는 더 나은 서비스를 보여주는 중국식당들이 넘쳐난다. 한식당의 메뉴판은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변화가 없다. 중국식당이 신세대의 입맛과 생활수준 변화에 따라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 한식당은 제자리에 머물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임대료와 임금이 급격히 오르고 관련 법규가 까다로워지는 상황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직원 고용 조건이 까다로워지고, 한식당에서 주로 사용하는 숯불이나 휴대용 가스레인지 규정, 오염물 배출 규정이 강화되는 흐름에서 버티지 못했다. 초기 투자 비중이 1.5배 이상 높아지는데 신규 투자는 어려워지면서 중국인 동업자에게 팔거나 사업을 접었다. 한식당은 지금 위기다.

 

그러나 아예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니다. 한국음식을 즐기는 중국인은 여전히 많다. 커져가는 중국 외식 산업에서 한식당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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