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지성이 향하는 한 점-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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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철학적 지성이 향하는 한 점- 행동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6. 28.

지난주 프랑스의 수능인 바칼로레아 시험이 치러졌다. 일주일간 치러지는 이 시험은 바칼로레아의 꽃이라 불리는 철학시험으로 문을 연다. 인문, 자연, 그리고 경제, 사회로 나뉜 각 분야의 학생들에겐 3개의 질문이 주어지고 학생들은 그 중 하나를 택하여 답을 쓴다. 무려 4시간 동안. 철학시험이 치러진 다음날, 언론과 방송들은 학자들을 초대해 각각의 질문들에 토론의 장을 벌인다. 모범답안을 제시하려는 시도이기보다는 바칼로레아를 통과한 후, 곧 세상에 발을 디딜 학생들이 철학적 고찰로 머리를 환기시켰던 것처럼, 사회 전체가 올해의 철학 문제를 들고, ‘사고를 자극시켜보는 경험’을 공유하는 일종의 철학주간 의식에 가깝다. 올해에는 올랑드 내각의 장관들이 기꺼이 자신들이 받은 바칼로레아 철학 점수를 공개하는 작은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는데, 철학과 교수 출신인 교육부 장관 페이용의 낮은 점수, 외무부 장관 로랑 파비우스가 내놓은 전대미문의 점수(20점 만점) 등이 호기심을 모으기도 했다.


프랑스 고등학교 졸업 자격시험 바칼로레아 고사장의 입구 (경향DB)


바칼로레아 철학시험은 시민사회에 걸맞은 주체적 시민 양성을 목적으로 19세기에 도입됐다. 따라서 철학문제는 언제나 한 개인이 사회와 맺는 관계에서 빚어지는 문제를 중심으로 제시돼 왔다. 올해 제시된 9개의 문제 중 눈에 띄는 한가지는 “정치에 무관심하면서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이다. 이 질문은 법과 도덕,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을 명확히 구별지을 것을 요구받는 프랑스적 사고를 훈련시키는 동시에 도덕적 정당성만으론 시민의식이 완성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한쪽에 담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 고등학교 졸업 자격시험 바칼로레아 시험 모습 (경향DB)


이번 바칼로레아 철학시험은 올해 처음 열린 ‘철학축제’와 맞물리기도 했다. 문화부와 교육부가 공동주관한 ‘철학축제’는 토론회와 방송, 영화상영, 철학책 출간, 전시행사 등이 함께 펼쳐지는 학술문화 축제로 우리의 일상에 철학에 대한 새로운 욕망을 불러일으켜 현대의 삶에 철학의 자리를 마련하고, 과거와 현재의 위대한 작가와 사상가들의 보편적이고 정제된 사고들을 나누게 하기위해 만들어졌다. 바칼로레아의 철학시험을 끝으로 3주 동안 이어진 축제 기간동안, 파리지하철 안에는 철학축제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거기엔 마하트마 간디의 한 문장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발견하는가? 우리를 발견하게 해주는 것은 명상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다.” 마치 우리가 철학을 하는 이유는 그 철학이 가져다준 명징한 사고가 결국 올바른 우리의 행동을 이끌어내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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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철학축제를 열고 행동의 중요성을 지하철 포스터를 통해 알리는 이 사회가 반드시 건강한 시민정신만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프랑스 사회는 아프고 뒤틀려 있고, 바로 그 때문에 정부는 철학이라는 처방을 대량 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민들의 생각을 희롱하고 조작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으면서 그에 대해 부끄럼조차 갖지 못하는 국가기관을 둔 또 다른 사회, 역사와 국어, 철학 따위를 학교에서 밀쳐내는 사회는 과연 어떤 미래를 가지게 되는 것인지 두렵지 않을 수 없다. “젊은이들이 부정을 보고 궐기하지 않으면 나라는 망합니다. 정말로 부정선거가 있었다면 학생들이 일어선 것은 참으로 옳은 일입니다. 또 그런 부정선거가 있었다면 나는 물러나야 마땅합니다.” 이런 바른 말을 한 사람은 3·15부정선거로 다시 권좌에 오른 이승만이었다. 그는 경무대로 찾아온 시민,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바로 하야를 선언했다. 암울했던 그시절, 청년들의 분노는 말년의 이승만에게 남아있던 한줌의 지성을 일깨웠고, 민주주의는 새 희망을 얻었다. 지금 우리의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목수정|작가, 파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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