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된 첫 동성애자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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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축제가 된 첫 동성애자 결혼식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5. 31.

수많은 골짜기와 산등성이를 넘고 넘어, 드디어 프랑스에서 첫번째 합법적인 동성애자 결혼식이 지난 수요일 저녁(29일) 남프랑스의 도시 몽펠리에에서 열렸다. 사회당 출신의 여성시장 엘렌 만드루가 주례를 선 가운데, 몽펠리에 시청에서 치러진 이 역사적인 결혼식엔 500여명의 하객이 참석했고, CNN에서부터 러시아 방송에 이르는 234명의 기자들이 몰려와 이 멋진 순간을 전 세계에 타전했다. 프랑스 첫 동성애자 결혼식을 치르게 된 몽펠리에시는 “프랑스에서 가장 동성애자에게 우호적인 도시”로 선언하고, 이날의 결혼식을 시민들의 축제로 만들었다. 


프랑스 첫 동성결혼 커플인 브뤼노 부알로(왼쪽)와 뱅상 오탱이 29일 몽펠리에 시청에서 결혼식을 마친 뒤 웃고 있다.(뉴시스)


이날의 주인공, 뱅상의 어머니는 “내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하다”라며 감격을 표현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우린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오늘은 축제의 날이다. 나는 내 아들의 결혼식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 또 다른 주인공 브뤼노의 어머니 눈엔 감격의 눈물이 가득했다. 이들의 결혼식은 두 사람의 결합이 결혼이라는 절차를 통해 공인되는 것임과 동시에 차별에 맞서 싸워왔던 이들이 긴 투쟁 끝에 승리의 열매를 거머쥐는 것이기도 했다.


주례를 맡은 몽펠리에 시장 엘렌 만드루는 “진보하는 사회는 존재하는 모든 차별과 끊임없이 싸우는 사회”라고 말하며, 이날의 감격을 모든 차별받는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다. 결혼식이 열린 시청 앞에는 수천의 인파가 모여이날의 축제를 함께했다. 결혼식 전날까지 반대집회를 벌이고, 협박전화를 하던 반대세력들도 이날만큼은 가시적인 행동을 자제했다.


이제 역사 속에 남게 된 그들의 이야기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브뤼노를 만나기 전까지, 아무 의심도 없는 이성애자로 살아왔던 뱅상은 브뤼노를 통해 처음 자신의 동성애적 정체성을 깨닫게 되었고, 둘의 사랑이 시작되자마자 부모에게 그를 소개시켰다. 그의 부모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행복한지 아닌지였을 뿐. 뱅상의 부모는 즉각 브뤼노를 만났고, 두 팔로 그를 받아들였다. 브뤼노는 16세 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에게 고백했고, 며칠 뒤 어머니는 무지개가 그려진 티셔츠를 사오셨다. 함께 게이 프라이드 축제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의 어머니는 현재 몽펠리에의 동성애 자녀를 둔 부모 모임을 이끌고 있으며, 매년 “내 아들은 게이다. 난 그것이 자랑스럽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신다. 아들의 결혼은 그의 어머니에게도 감격스러운 승리의 열매였다.


지난 주말까지도 동성애 반대세력은 대규모 집회를 벌였다. 경찰추산 15만명, 주최 측 추산 100만명의 인파는 파리 시내를 누비며 그들의 진정한 속내를 드러냈다. 동성애자 결혼에 반대하는 것뿐 아니라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차별이 있고, 기득권이 소수를 위해 유지되는 바로 그런 사회라는 것을. “우린 혁명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전통을 원한다.” 이들의 슬로건은 막판으로 치닫는 우파 시위대의 본심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날 시청사 앞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반대자들이 시위를 벌이자 사법경찰들이 제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789년에도, 1968년에도 혁명의 물결이 온 세상을 덮으며 불평등을 깨부수고, 더 넓고 세심한 민주주의가 시대정신에 스며드는 그 순간에도 그 흐름을 거부하는 자들은 존재했다. 역사가 새로운 장을 기록하는 이 순간, 언제든지 있어왔던 반동 세력은 그들의 마지막 화염을 거리에 내뿜었다. 시위대 앞에 서서 톡톡히 정치적 이득을 챙기던 우파 정당의 대표도 이번이 자신이 참가하는 마지막 시위가 될 것이라고 선언한 만큼, 당분간 그들의 섬뜩한 슬로건을 거리에서 마주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번 주말엔 레즈비언 커플이 같은 몽펠리에 시청에서 축제의 바통을 이어받는다. 축제의 빛은 파시스트들의 저주를 이기고 말 것이다.


목수정 | 작가, 파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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