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의 정치학: 오바마 대통령과 음모론의 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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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의 정치학: 오바마 대통령과 음모론의 토양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12. 10.
혼혈주제와 관련되는 미국 정치판의 음모론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반대파들이 그의 시민권에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이다.

▲민주당 홈페이지에 실린 버락 오바마 대통령 사진.

우선 오바마의 출생과 성장 배경을 간단히 전하면 다음과 같다. 버락 오바마는 1961년 8월 4일 호놀루루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캔사스에서 출생한 백인 미국시민이고, 아버지는 하와이대학에 유학 온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케냐의 시민이다. 어머니는 1964년 이혼 후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했고 1967년 오바마를 포함한 가족은 자카르타로 이주했다. 그러나 1971년 10살이 된 오바마는 호놀루루로 돌아와 외조부모와 함께 살며 고등학교를 마쳤고 대학부터는 미국 본토로 가서 공부하고 활동하였다. 

한편 미국 헌법 1조 2항에는, 미대통령 피선거권자는 “출생에 의한 시민”(natural born citizen)이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출생지주의”(jus soli)를 채택하는 미국은 부모의 미국시민 여부와는 상관없이 미국 사법권 관할 안에서 출생하면 ‘출생에 의한 시민’이 되고, 이는 ‘귀화에 의한 시민’과 구분된다.  

그런데 2008년 중반 오바마가 민주당 프라이머리에서 승리하자, 반대파에서는 호놀루루에서 태어났다고 제출한 오바마의 출생증명서가 가짜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2008년 11월 출생증명서 문제를 내세운 반反 오바마 시위 플랜카드. 시위자는 두 개의 성조기를 통해 자기행위가 애국심의 발로임을, 또 왼쪽 하단의 맥케인 지지스티커를 통해 자신의 공화당 소속감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 (사진: 플리커 



오바마측은 온라인 사이트에 출생신고서 사본을 올렸고, 하와이 보건부도 공화당 소속 주지사도 사본이 진짜라고 공인했으며, 생후 며칠후 외할아버지가 지역신문에 낸 출생광고도 확인되었지만, 반대파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왼쪽은 오바마 측이 온라인에 올린 출생증명서이고 

▲오른쪽은 담당의사와 병원명이 기재된 출생신고서에서 호놀루루 주소지를 확대한 것이다(사진보기)

심지어는 (곧 가짜로 밝혀진) 케냐 출생증명서라는 것도 등장했다. 혹자는 오바마가 영국인이거나 인도네시아인 이중국적자였으므로 출생에 의한 시민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주장들은 바로 각종 법률소송으로 이어졌고, 모든 소송은 곧 바로 기각되었다. 실제로 반대론자들의 주장과 몇 가지 확실한 증거들을 결합하면, 

“1961년도에 호놀루루에 사는 19살의 백인 미국인 소녀가 케냐인 남성을 만나 임신하고 결혼한 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케냐로 건너가 흑백 혼혈 아이를 낳았다. 산모는 출산한지 열흘도 되지 않아서 출생신고가 안되어 여권도 없는 갓난아이를 데리고 다시 호놀루루로 돌아왔다. 아이의 외할아버지는 나중에 이 손자가 대통령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역신문 광고와 보건부 등록서류에 아이가 호놀루루에서 태어났다고 거짓기재를 하였다.” 
라는 황당한 뒤죽박죽 스토리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생증명서 문제는 세간의 이목을 끌었고 공화당의 세금인상 반대파(소위 TEA[taxed enough already] party)는 이를 이용하여 상당한 액수의 정치모금에 성공하였다. 



◀픽업트럭 뒤에 붙인 범퍼스티커.픽업트럭 뒤에 붙인 범퍼스티커. 티파티(증세반대 모임) 지지내용과 함께, 오바마의 슬로건을 비꼰 내용과 출생증명서에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을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붙여놓았다. ‘출생지 의혹’을 ‘정책에 대한 반대’로 연결짓는 사고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지만 집단을 이루게 되면 이처럼 공공연하게 과시된다.


오바마의 49세 생일인 2010년 8월 4일 실시된 CNN의 설문조사에서는, 미국 성인 중 42%만이 오바마의 미국 출생 사실을 ‘전적으로 믿는다’고 답했고, 29%는 ‘아마도 그럴 것’(probably yes)이라고 답하여 여운을 남겼다.





이런 설문결과에 대한 대표적인 내부자 설명은 미국 건국과정에 뿌리하고 있는 미국 시민사회의 정치적 양분화를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설문조사 응답의 차이는 정당소속별로 또 지역별로 확연하게 갈라진다. 하지만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좀 더 근본적이고 비교적 차원의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왜 황당한 음모론이 받아들여지는가? 모든 인간은 나약하고 제약이 많은 존재로, 원하지 않고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일말의 가능성’을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런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물리적 취약성을 보완하여 사회관계를 맺고 복잡한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에 내재된 것인지도 모른다. 가정법(“-라면”)이나 부정가정법(“-가 아니라면”)으로 사고하고 의사소통하는 능력이야말로 진화과정에서 발달한 현생인류의 종(種)적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따져보면 ‘음모론’은 역설적이게도 ‘희망고문’과 한 뿌리로 보이며, 특히 정치영역에서의 음모론은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등장해왔다. 하지만 각각의 음모론은 특정한 토양과 햇빛, 수분, 바람이 조성하는 고유의 환경 속에서 자라난다. 미국 현직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 음모론 플롯은 미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시나리오가 쓰여지고 무대에 올려져 관객들이 반응을 보이는 한 막을 내리지 않은 상황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음모론자들은 왜 시민권을 문제 삼는가? 

이민자 국가인 미국은 출생지주의에 입각하여 시민권을 주게 되었고, 논리상 시민의 인종/종족을 문제삼을 수 없다. 그동안 43명의 백인 대통령이 등장해 온 미국 정치역사에 오바마가 출현한 지금, 아무리 흑인대통령이 싫은 사람이라도 인종/종족 차별 논리로 반대하면 자기가 속한 국가 구성의 기본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 인종차별은 시민권 의혹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그런데 오바마의 시민권에 대한 문제제기는 미국 법률이나 공식기관의 권위를 의심하는 것이 되고, 이는 또 다시 자기가 속한 국가 기반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그러니 시민권 문제는 출생증명서 조작이라는 음모론으로 변질되어 일련의 끈덕진 법률소송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어나간다. 

공문서 조작을 고발하는 정의감이라는 포장지로 법률적 공정함을 촉구하는 시민의식이라는 선물상자를 싸놓았지만, 실제 안에 든 내용물은 국민 국가의 합의를 뒤흔드는 인종차별적 인식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바마가 하와이 출신이라는 사실은 음모론의 내용에 영향을 미쳤을까? 하와이 보건부는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하와이에 출생신고를 하더라도 출생지는 사실대로 기록된다고 밝혔지만 음모론자들은 하와이의 행정시스템을 신뢰하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하와이는 195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래스카보다도 더 나중에, 미국의 50번째 주(州)가 되었다. 당시 미의회에서는 하와이가 인종/종족적 혼혈이 우세한 지역이기 때문에 미연방에 포함시키는 것을 주저하였다. 만일 오바마가 뉴욕에서 태어났더라면 정부의 공문서가 조작된 것이라고 의심받을 가능성은 아주 낮아졌을 것이다. 

미국은 이주민 국가이면서 동시에 50개 주의 연방체제이다. 일찍이 1775년 영국에 대항하기 위해 결집한 15개 주가 1959년 50개로 늘어나는 국가 건설과정에서, 각 주는 각기 다른 성격의 이주와 추방, 승리와 패배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으며 인종/종족과 혼혈에 대한 입장도 다양하다. 결과적으로 주에 대한 자부심과 차별, 지역주의 등은 각 개인과 집단의 정치권력과 문화자본을 위한 원재료가 된다.


내게 오바마의 하와이 출생에 대한 의혹제기는, 흑인, 혼혈, 이주 집단이 가시적으로 정치세력화 되는 것을 불안해하는 집단의 비이성적 자기 정당화로, 소수집단과 변방지역의 하위성을 재확인시켜 자기 입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의 히스테리적 자기 강화로 보인다. 

2010년 8월 29일 NBC 뉴스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새로운 미디어 시대에 잘못된 정보를 전파하는 메카니즘이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고도로 복잡해진 미디어 시대에도 사회의 메카니즘은 누군가의 특정한 에너지로 돌아간다. 잘못된 정보를 전파하는 메카니즘의 작동을 멈추기 위해서는 그것의 동력원을 알아야한다. 이것이 우리가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끊임없이 돌이켜보고 주변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동기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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