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아메리카노] 마이클 샌델과 덕을 가진 시민들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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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지난 시리즈

[카페 아메리카노] 마이클 샌델과 덕을 가진 시민들의 민주주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11. 3.

원래 이 칼럼의 문패는 <뉴욕 에세이>으로 계획되었다가 나중에 <카페 아메리카노>로 그 이름을 바꾸었다. 원래의 계획은 뉴욕시에서 거주하면서 그곳의 학자들과 만나는 이야기들, 뉴욕시에서 살아가면서 갖게 된 생각들을 글로 쓰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뉴욕시에서 한 달을 지낸 뒤 거주지를 뉴저지로 옮기게 됨으로써 그 방향이 조금 바뀌게 되었다. 뉴저지라 해도 맨해튼에서 다리 하나 건너 있는 곳에 숙소를 정했기에 생활반경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문패명의 변경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카페 아메리카노>로 문패명을 정하면서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어느 카페에서 카페 아메리카노를 시킨 뒤 크림과 설탕을 달라고 했다. 직원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하는 말이, 카페 아메리카노는 크림이나 설탕을 넣지 않고 먹는 커피라고 말했다. “미국 사람들은 커피를 항상 블랙으로 먹잖아요.”라고 덧붙이며 말이다. 그 말에 어이가 없었다. 적어도 내가 만난 수많은 미국 사람들은 커피에다 우유나 크림, 혹은 설탕을 섞어 먹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생각난 일은 유학을 떠나기 전의 일이었다. 자동차의 변속장치에는 자동과 수동이 있고, 요즈음 우리나라에는 자동 변속장치가 일반화되었다. 하지만 유학가기 전에만 하더라도 수종 변속장치가 대부분이었다. 한 지인과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그는 미국 사람들은 90% 이상이 수동을 사용하고 있는데 당신은 유학을 간다면서 그것도 모르느냐고 나를 힐난하는 것이었다. 피차 미국 경험이 없었기에 어떻게 그걸 알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책에서 보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미국 사람들은 실용적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름을 더 많이 먹는 자동 변속장치는 인기가 없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래서 나는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수동 변속기가 있는 자동차를 찾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람들이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 실제로 미국의 모습과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칼럼에서 미국은 이런 모습이라고 말하는 것도 우스운 일일 것이다. 내가 경험하고 바라본 미국이래야 한 단면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건국의 정신을 담은 미국의 모습이다. 이는 미국에서 근래에 발전하고 있는 새로운 공화주의 사상과 연관하여 더욱 주목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 이것은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정의에 대해 강의하는 샌델. 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제도적 보호는 사회 정의의 기본 원리라고 했다. 


지난 11월 초에 하버드를 들러 샌델 교수의 그 유명한 강의를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이메일을 통해 만날 시간을 조정해 보다가 결국 그의 강의 시간 후에 잠시 대화를 하기로 했었던 것이다. 마침 내가 방문한 때의 강의는 존 롤스의 정의의 원칙에 대한 것이었다. 롤스는 자유도 중요하지만, 한 사회에서 약자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평등의 원칙에 따라 최소한의 사회적 혜택을 부여받아야 한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샌델도 이 점에 전적으로 동의를 한다. 

무엇보다도 샌델은 미국의 건국 정신을 공화주의로 승화시킬 것을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시민의 자유는 공동체의 자치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선거에 임해 자신의 선호도나 이익에 따라 정당을 선택하고 후보자에게 표를 준다는 문제 이상의 것이다. 시민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운명을 다스리는 힘을 형성하는 데 참여해야 한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 시민들은 시민적 덕목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이 덕목들은 위기에 처한 공동체와의 도덕적 유대, 동료 시민들에 대한 의무감, 공동선을 위해 사익을 희생하는 정신, 그리고 공동의 목적과 목표에 대해서 잘 숙고하는 능력 등을 포함한다. 정치가의 덕목은 이러한 시민의 덕목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들이 시민과는 별개의 존재일 수는 없다. 특히 정치가에게는 공동선을 위해 숙고하고, 자신의 이익을 초월하는 생각을 할 수 있으며,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정치가의 덕목이다.


                                                                                             정의에 대해 강의하는 샌델

지난번 칼럼에 소개했던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의 말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As a nation we’re founded on the belief that all of us are equal and each of us deserves the freedom to pursue our own version of happiness; to make the most of our talents; to speak our minds; to not fit in; most of all, to be true to ourselves. That’s the freedom that enriches all of us. That’s what America is all about. And every day, it gets better.

-하나의 국민으로서 우리는 우리 모두가 평등하고 우리 모두가 우리 자신의 방식대로 행복을 추구할 자유, 우리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자유, 억지로 우리 자신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자유, 특히 우리가 우리 자신들에게 진실할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는 믿음위에 기초 위에 서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를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자유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다. 그리고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이 부분에 덧붙여진 “이게 바로 미국이다.”라는 말이 참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미국의 현실이 멋지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말로 추구해 온 가치가 선명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가치를 중심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앞으로 어떤 미국을 이루어갈 것인가에 대한 신념이 표현했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에 한국에서 벌어진 일들, 특히 국회 예산안의 폭력적 통과와 통과된 예산의 문제점, 특히 복지 관련 예산의 삭감에 대해 들으면서 과연 우리가 “한국”이라는 이름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이며, 또 그러한 가치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다시금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의 그들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했다. 샌델이 말하는 덕을 가진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김선욱의 카페 아메리카노>는 3주에 1회 경향신문 본지 월요일자에도 연재 됩니다. 
블로그에서는 분량의 구애없이 좀 더 다양한 글과 사진을 싣고 있습니다. 
<마이클 샌델과 덕을 가진 시민들의 민주주의>의 신문 버전(2010.12.13)은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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