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아메리카노] 번스타인 교수와의 저녁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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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지난 시리즈

[카페 아메리카노] 번스타인 교수와의 저녁 식사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10. 11.

현재 필자가 안식년을 지내고 있는 New School 근처에서 바라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모습. 구름에 윗부분이 가려있다.

 


저명한 학자들의 사교적 대화는 어떤 것일까?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주제로 대화에 임할까?

이런 의문은 지난 일요일 밤에 있었던 리처드 번스타인 교수의 저녁식사 초대 자리에서 해소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의문은 오래전 조가경 교수님 댁에서 그와 가다머, 그리고 하이데거와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본 뒤부터 가지게 된 것이니, 꽤나 오래된 의문이었다.

버팔로 대학의 조가경 교수

조가경 교수님은 6․25 전쟁당시 국비 유학생으로 독일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귀국하여 후진을 양성하다가 1960년대 말에 당시 활동하던 미국의 1세대 현상학자인 마빈 파버 교수의 후임으로 뉴욕주립대학 버팔로 대학에 부임하여 팔순이 넘은 지금까지도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고 계시는 대표적인 재미한인 학자이다.

1990년대 초에 그는 대학으로부터 학문의 깊이와 탁월한 강의능력을 인정받아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석좌교수가 되어 지금까지 명강의를 계속해오고 있다. 최근에 만나 뵈었을 때 그분은,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강의하는 것이 더 재미가 있어진다고 하셨다.

밤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졸음이 올 때 떠올리면 졸음이 싹 달아나는, 조가경 교수님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병원에서 검진을 받는데 혈압이 높게 나왔다고 한다. 의사가 조교수님께 요즈음 특별한 일이 있는지, 밤에 잠은 잘 주무시는지를 물었다. 당시 논문을 발표해야 할 일이 있어, 밤늦게 졸음을 쫓아내면서 연구를 한다고 대답을 하셨다.

어떻게 졸음을 쫓아내는지를 묻는 의사에게 조교수님은 “인스턴트커피 한 티스푼을 입에 넣고 침으로 녹여 삼키면 졸음이 싹 달아나지요.”라고 대답을 하셨다. 의사는 기겁을 하면서,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마시라고 강력히 경고했다고 한다. 이때의 조가경 교수님의 연세는 75세 정도였다. 사이신 노교수님께서 그 연세에 그렇게 열심히 연구에 매진하신다는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제자인 내가 따듯한 잠자리에서 편히 잠이나 자고 있을 수 없게 된다.

번스타인 교수와의 인연

번스타인 교수를 알게 된 것은 미국 유학을 가기 전에 한국에서 위르겐 하버마스의 철학을 공부하면서였다. 그가 편집한 《하버마스와 근대성》이라는 책의 서문은 하버마스 철학이 어떠한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었기에 사상적인 변화를 해 나갔는지를 잘 보여주는 역작이었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 조가경 교수님의 사회과학 방법론 세미나에서 번스타인 교수가 쓴, 하버마스, 가다머, 로티 등의 사상가들의 차이점이 어디서 발생하는지를 밝혀낸 글을 읽으면서 그의 학문의 폭과 지성의 날카로움을 잘 느낄 수 있었다.

그 이후 번스타인 교수의 연구들을 두루 살펴보니 대부분의 현대 사상가들의 생각을 꿰뚫고 있고 또 그들과 폭넓고 깊은 학문적 교류를 하는 가운데 철학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다가 수년 전에 ‘아모르 문디’라는 이름의 출판사의 김삼수 편집장이 찾아와 번스타인 교수의 저서 가운데 《한나 아렌트와 유대인 문제》라는 책을 번역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다. 한나 아렌트는 내 전공이기는 해도 이 책은 특히 유대인 문제를 학문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새로운 분야여서 흥미가 있었다.

여러 해 동안 끌다가 작년에 드디어 출간을 하게 되었고, 때마침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석학초청강좌의 기회가 있어 번스타인 교수를 한국으로 모셔서 두 차례의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영문학을 전공한 부인인 캐럴 번스타인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두 분의 모습은 깨끗하고 아름답게 학문의 이력을 보낸 두 노학자 부부였고, 자동차를 타거나 방을 이동할 때 서로를 챙기는 모습에서 서로를 끔찍이도 아끼며 정을 나누는 모습에 나와 다른 참석자들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정말 멋있는 노학자 부부다.”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났던 것이다.

뉴스쿨에 연구교수로 오다

내가 뉴스쿨에 연구교수로 오게 된 것은 풀브라이트 재단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서였다. 연구년을 보내는 교수들에게 재정지원을 해주는 프로그램에 응모하고 작년 10월초에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인터뷰어 가운데 정치학을 전공한 교수 한 분이 내 이력을 살펴보고 질문을 하는 가운데, 한나 아렌트를 전공했으면 하버드보다는 뉴스쿨을 가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건물 입구. New School은 여러 종류의 대학의 연합체이며 대학원이 있는 곳은 맨해튼 16가에 위치해 있다.


내가 제출한 관심 있는 대학 세 곳 가운데 첫 번째는 하버드였고, 번스타인 교수가 있는 뉴스쿨은 세 번째였다. 나는 좀 당황했지만 하버드를 일순위로 놓은 이유를 적당히 설명하고 넘어갔다. 결국 연구비를 받는 행운을 입었으나 어느 대학으로 갈 것인가는 확정을 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규정상으로는 내가 제출한 세 대학 가운데 어느 한 곳으로 가기만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12월에 한국을 방문한 번스타인 교수에게 이 내용을 이야기했더니, 두말 할 것도 없이 뉴욕으로 오라고 딱 잘라서 말하는 것이었다. 나를 데려가 봐야 귀찮기만 할 텐대도 너무나 단호하고 분명하게 뉴스쿨로 오라기에 왜 그렇게 분명하게 말하는지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뉴욕이 문화의 중심지고 또 많은 정치사상가들이 뉴욕을 중심으로 모여 있으며 활발한 학문적 대화와 사상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내가 알만한 학자들의 이름을 열거하였다. 그 가운데는 셰일라 벤하비브가 있었다. 그녀의 책이 한국에 번역되지는 않았으나 여성학자, 아렌트 연구가, 정치철학자들 가운데는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녀도 뉴욕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하버드 정치학과에 있는 것으로 알았으나 예일대학교 정치학과로 옮겨와 있었다. 그리고 뉴욕에서 예일까지는 자동차로 한 시간 이내의 거리여서, 집을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 근처에 구해 살면서 예일대까지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올해 4월까지도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하버드를 뒤로하고 뉴욕행을 결정했다.

New School 도서관 입구. 맨해튼 도처에 퍼져있는 New School의 입구에는 사진에서 보듯 학교의 이름을 새긴 붉은 색 배너가 달려 있다.

 

New School과 가까이 있는 유니언 스퀘어의 야경


번스타인 교수의 저녁초대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번스타인 교수를 만났고, 그는 곧바로 나와 아내를 저녁식사에 초대하겠노라고 말했다. 하지만 초대는 뉴욕에 온지 딱 한 달이 되는 때 이루어졌다. 그 자리에 셰일라 벤하비브와 제롬 콘을 함께 초대하면서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다들 바쁜 사람인데다 제롬 콘은 좀 먼 곳인 롱아일랜드에 살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가능한 시간을 맞추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제롬 콘은 한나 아렌트의 조교였었고, 지금은 그녀의 유고들을 모아 책으로 계속해서 출간을 해내고 있다.)

게다가 그 모임 일주일 전에 번스타인 부부는 코스타리카에 가서 강의를 해야 했었다. 이렇게 바쁜 분들을 모아 자리를 마련해 준 번스타인 교수의 배려에 나로서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일요일 저녁 7시를 조금 넘겨 번스타인 교수 댁의 벨을 눌렀다. 그의 집은 센트럴 파크 오른편 끝으로 강변 가까이에 있는 아파트였다. 넓은 거실에는 각종 골동품들과 미술작품, 그리고 그의 아들이 감독한 영화 <이상한 나라의 피비>의 포스터가 있었다.

거실에 원형으로 소파와 테이블이 있어 거기에서 먼저 온 제리(제롬 콘의 별명)와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셰일라 벤하비브가 남편과 함께 들어왔다. 샴페인과 포도주, 그리고 쿠키를 놓고 대화를 점 더 나눈 뒤 식탁으로 옮겼다.

번스타인 교수와 동갑인 사모님 캐럴이 직접 만들고 번스타인 교수와 함께 서빙을 한 음식을  나누었다. 양송이 스프, 바게트 빵, 껍질째 먹는 작은 감자, 캐롤의 비법 소스를 곁들인 연어 스테이크, 샐러드, 그리고 디저트로 등이 차례로 나왔다.

유니언 스퀘어에서 수요일과 금요일마다 열리는 시장. 인근의 농장에서 재배한 농산물이나 과일, 직접 만든 빵이나 주스나 쨈 등을 가져와 판매한다. 캐럴이 만들어 준 맛난 저녁식사의 비결 중 하나는 여기서 구입한 채소와 연어였다고 한다.

셰일라 벤하비브가 캐럴에게 다가가 도와드릴까고 물었으나, 캐럴은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으니 염려 말고 앉아서 식사를 하라고 했다. 서빙과 식사, 그리고 빈 그릇을 치우는 일까지 모두 번스타인 교수 내외가 다 하면서 즐거운 담소까지 나누었다. 물론 번스타인 교수가 대화의 주제를 주도하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존경이 넘치는 대화의 주제들

내가 방문자이니 대화는 나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는 근간에 예일대에서 추진하고 있는 싱가포르 분교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으면서 대화가 아시아로 확대되었고, 각자의 근간의 생활과 학문적인 이야기, 정치적 주제 등으로 이어졌다. 또 캐럴의 비법 소스의 레시피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대화 가운데 허튼 소리나 불필요한 농담은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

이스라엘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셰일라는 최근 예루살렘에서 지내다 왔는데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한 데모에 참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예루살렘의 젊은 청년들의 분위기는 기성세대들과는 많이 다르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한 데모대에 참여를 했는데, 자기는 남미 사람들의 무리에 끼어 걸었다고 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최근에 한나 아렌트의 사상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것은 한국의 아렌트 연구가들이 가진 공통적인 의문이었다. 아렌트가 유대인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기여를 했으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출간 직후부터 주류 유대인 세력과 적대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 홀로코스트의 과정에서 유대인 지도층 인사들의 활동의 문제점들을 지적한 부분과 학살의 원흉인 아이히만에 대한 서술과 평가를 주류 유대인들이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이전, 즉 이스라엘 건국에 대해 논의할 당시부터 아렌트는 지금의 이스라엘과 같은 모습으로 국가가 건설되어서는 안 된다고 줄곧 주장했었고 이를 통해 주류 유대인 집단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아렌트는 팔레스타인들을 밀쳐내고 그곳에 이스라엘 단독 주권국가를 수립할 것이 아니라, 그곳의 팔레스타인인, 아랍인 등과 공존할 수 있는 연방제 국가를 만들 것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건국 후, 그리고 특히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출간 이후, 아렌트는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했고, 그녀의 저서는 2000년에 들어 와서야 히브리어로 번역될 수 있었다. 아렌트에 대한 학술 컨퍼런스도 그 즈음에야 처음으로 열릴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녀의 사상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환영을 받고 있다고 한다. 아렌트를 “철없는 여자”로 여긴 기성세대들과는 달리 그녀의 정치사상은 젊은이들의 생각을 고무하고 자극하는 중요한 원천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11시를 넘어 끝난 모임

치즈와 포도주로 디저트를 한 뒤에도 한참을 더 대화를 하다 보니 시간이 11시를 넘고 있었다. 7시에 시작한 모임이니 9시 혹은 늦어도 9시 반이면 끝날 것이라던 내 예상과는 달리 긴 시간을 존경과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대화로 채웠다.

모두들 학문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 일요일 밤의 모임이 이렇게 길어져도 별로 상관이 없었던 것 같았다. 비즈니스에 종사하거나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좀 다르겠지만 말이다. 11시를 넘기자 셰일라가 모두 내일 강의는 없지만 그래도 월요일이라 한 주가 시작되니 이만 자리를 파하는 게 어떠냐고 말한 다음에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거리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떠났고, 나와 아내는 마침 다른 일로 렌터카를 해 놓은 게 있어서 네 블록 떨어진 주차지역으로 10분 정도를 걸어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김선욱의 카페 아메리카노>는 3주에 1회 경향신문 본지 월요일자에도 연재 됩니다.
블로그에서는 분량의 구애없이 좀 더 다양한 글과 사진을 싣고 있습니다.
<번스타인 교수와의 저녁식사>의 신문 버전(2010.10.11)은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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