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아메리카노] 자연 속에 선 동성애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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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지난 시리즈

[카페 아메리카노] 자연 속에 선 동성애 커플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12. 13.

맨해튼을 처음 구경했던 것은 유학 초인 1992년 12월 성탄절이었다. 지금은 허드슨 강 건너편 뉴저지 지역에 살고 있는 친구가 그때는 뉴욕시에 속한 베이사이드에 살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자동차로 8시간을 달려 찾아 간 친구 집에서 민폐를 끼치며 지내던 중, 크리스마스날 맨해튼 구경을 나갔다. 우연히 주차한 곳에 성 패트릭 대성당이 있었다. 


성당 안에 있는 동성애자를 위한 기도처

성 패트릭 대성당은 1906년에 고딕식으로 지은 성당이다. 성 패트릭은 아일랜드 사람들의 수호성자이기 때문에 이 성당은 아일랜드계 사람들이 만든 것으로 생각이 된다. 이 성당은 세계 4대 성당 가운데 하나라고 할 정도로 그 웅장함과 섬세함이 탁월한 곳이다. 7000개가 넘는 파이프가 달린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당시 성당의 아름다운 외관과 내부를 구경하다가 한쪽에 작은 촛불들이 한가득 모여 있고 그 위 벽에 기도문을 써 붙여 놓은 곳이 눈에 들어왔다. 예배당 안에 위치한 그곳은 에이즈로 죽은 이들을 추모해 만들어 놓은 기도처였는데, 동성애자들을 위한 기도문도 함께 있었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당시 나는 에이즈는 동성애자들이나 걸리는 천벌 정도로, 더욱이 동성애는 종교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짓”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성당의 벽면에는 예수님이 재판을 받고 십자기를 끌며 골고다 언덕에 까지 이르는 길을 나타내는 <비아 돌로로사>의 모습을 담은 스테인 글라스가 있었다. 종교적 장중함을 그대로 담은 성당과 기도처의 분위기는 참으로 잘 어울렸는데, 그때의 심정으로는 그러한 잘 어울리는 분위기 자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느낌을 주기까지 했다. 


김수현씨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동성애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김수현 씨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두 주 전에 끝났다. 우리 가족이 정말로 즐겨 보았던 드라마였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일들, 그리고 극단적 사건이랄 수 있을 장남의 동성애자로서의 커밍아웃이 그러한 일상을 어떻게 더욱 아름다운 삶으로 승화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정말로 훌륭한 드라마로 생각이 되었다. 

경향신문 DB


하지만 동성애라는 주제는 한국 사회에서 쉽게 공개적으로 다루어질 수 없는 주제인 것이 사실이다. 이 드라마가 동성애를 중심 주제로 삼게 되고,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드라마를 즐기던 사람들의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을 때 내가 아는 신학자 한 분이 기독교계통의 신문에 “동성애에 대한 판단을 강요하지 말라”라는 비판적인 칼럼을 썼다. 핵심 논지는 김수현씨의 드라마는 동성애를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를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고, 그런 식으로 드라마를 전개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주장은 내게는 ‘동성애자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개인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있으나 한국의 목사로서 인정할 수는 없다’는 의미로 읽혔다. 물론 이것은 내가 오독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후 내가 만난 나와 친하게 지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과 김수현씨의 드라마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면 대체로, 김수현 씨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번 드라마가 “그 짓” 다루기 시작하자 더 이상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짓”이란 물론 동성애를 말하는 것이다. 불편하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드라마를 찍는 과정에서 동성커플 경수와 태섭의 언약식 장면을 성당에서 찍으려다 성당 측의 반대로 쫓겨난 이야기며, 다른 곳에서 촬영한 언약식 장면이 실제 방영에서 삭제되었다는 이야기도 읽을 수 있었다. 18년 전 맨해튼의 성당에서 본 광경이 이런 이야기와 겹쳐 내게 다가왔다. 


럿거스 대학생의 자살 사건

이런 와중인 지난 9월 중순에 뉴저지에 위치한 럿거스 대학의 한 학생이 뉴저지와 맨해튼을 잇는 조지 워싱턴 브리지에서 투신자살하는 사건 소식이 들려왔다. 죽은 학생인 타일러 클레멘티(Tyler Clementi)는 기숙사 방을 함께 사용하는 룸메이트인 라비에게 친구와 함께 있을 동안 잠시 자리를 비워줄 것을 부탁했는데, 라비는 클레멘티가 동성연애를 할 것으로 생각하고 그 방에 웹켐을 설치하면서 자신의 트위터 팔로워들에게 실시간으로 중계할 것을 예고했고 또 실제로 그렇게 중계방송을 해버린 것이다. 클레멘티는 이 사실을 알게 되고 학교 담당자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니 이 일로 인해 받은 정신적인 충격을 어쩌지 못하고 결국 그 다음날 자살을 해버린 것이다. 조지 워싱턴 브리지는 클레멘티의 가족이 살고 있는 릿지우드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이 사건이 나자 지역경찰은 이 일이 동성애에 대한 증오범죄가 아닌지 면밀히 살펴보는 모습을 보였다. 뉴저지 동성애 권리운동 단체의 대표인 스티븐 골드스틴은 “이 일이 한 젊은 이의 성적 정체성에 근거한 괴롭힘과 학대 행위임이 명백하다”고 주장하였다. 몰래카메라를 찍었던 그 학생에 대한 처벌은 과연 그 사안이 증오범죄가 아닌가의 여부가 가장 큰 관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뉴욕 타임즈>는 보도했다. 지나친 장난행위와 증오에서 발생한 행위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고, 특히 후자일 경우에는 증오범죄를 중시하는 미국사회에서 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증오범죄란 소수인종이나 소수민족, 동성애자, 특정종교인 등 자신과 다른 사람 또는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이유 없는 증오심을 갖고 불특정한 상대에게 테러를 가하는 범죄행위를 일컫는 말이다미국사회에서는 차이의 문제가 증오로 이어지지 않도록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오바마의 연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바마 대통령은 “상황은 점점 더 나아질 것이다(Things will get better)”라는 연설을 했다. 비디오 녹음 후 공개한 방식으로 제공한 이 연설에는 “동성애자가 왕따를 당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인간은 누구나 자기 방식대로 행복을 추구할 자유가 있다...미국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이런 자유다...그래도 매일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라는 내용을 담았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왕따(bullying)를 없애려는 노력에 한 몫을 한 것이다. 

이 연설 가운데 미국이란 나라는 어떤 나라라는 자신의 신념을 담은 표현이 나온다. 그런 미국 정체성에 대한 신념이 타당한가라는 문제는 별개로 하더라도, 한 나라가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천명하는 태도는 부러운 일이다. 우리 한국을 지배하는 가치는 무엇이며, 또 우리는 이 대한민국 공동체의 이름으로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때 그렇다.


동성애 자체를 범죄로 볼 것인가?

<인생은 아름다워>는 우리에게 어떤 관점에서 인생을, 그리고 삶속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세심히 보여 주었다. 마지막 회에서 젊은 대학생 초롱과 동근 커플의 대화를 통해 문득 등장한 “인생은 60부터 철이 든다”라는 말에서, 동성애도 깊은 인생 경륜을 가진 어른스러운 이의 관점에서 살펴보라는 김수현 씨의 충고를 읽을 수 있었다. 인생의 행로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일은 그대로 받아들일 일이지 선과 악의 문제로 바라볼 일이 아니다, 선과 악은 진리와 거짓 혹은 옳고 그름을 다루는 종교적 방식인데 동성애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라는 충고 말이다. 드라마에서 동성애자인 태섭이 한 말처럼 그들은 “범죄자”가 아니다.

성당에서의 동성애 커플 언약식 촬영이 불가해진 뒤 선택된 장소는 자연 속이었다. 동성애는 과연 부자연스러운 행위일까?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자연스러운 법, 즉 자연법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오래된 것이었다. ‘순리’라는 말이 그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자연스러움’과 ‘순리’가 임의적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숲 속에서의 언약식 설정은 동성애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암시로 볼 수 있다. 
종교인의 염려는 동성애의 인정이 낳을 성 모럴의 급격한 변동에 있지 않나 싶다. “성을 권하는 사회”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성에 치중하는 우리 문화를 염두에 둘 때 공감할 수 있다. 실로 동성애자나 이성애자 할 것 없이 성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순결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이들을 부당하게 힘들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선욱의 카페 아메리카노>는 3주에 1회 경향신문 본지 월요일자에도 연재 됩니다. 
블로그에서는 분량의 구애없이 좀 더 다양한 글과 사진을 싣고 있습니다. 
<자연 속에 선 동성애 커플>의 신문 버전(2010.11.22)은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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