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도, 정치개혁도... 모두 후퇴하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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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도, 정치개혁도... 모두 후퇴하는 일본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9. 1.
-일본 후쿠시마 원전 근로자가 백혈병으로 숨졌다고.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일하던 협력회사의 40대 근로자가 급성 백혈병으로 숨졌다고 아사히신문이 31일 보도했습니다. 도쿄전력에 따르면 숨진 사람은 8월 초 원전에서 일주일간 다른 근로자들의 방사선 피폭 관리 업무를 했습니다.
그 후 몸이 불편하다고 호소했고, 며칠 뒤 숨졌습니다. 이 남성은 그 때가 처음으로 원전에서 근무한 것이고, 방사선 피폭선량은 0.5 밀리시버트(m㏜)정도였습니다. 높은 수치이긴 하지만 신체에 직접적 영향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원전에서 일하기 전에 받은 건강 진단에서는 건강상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도쿄전력측은 "숨진 남성의 작업과 백혈병 사이에 인과관계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간 나오토 전총리가 통과시킨 재생에너지 특별조치법>
 


일본 후생노동성의 급성백혈병 산재인정기준에는 ‘연간 5밀리시버트 이상의 피폭’, ‘1년간의 잠복기간이 있을 것’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법 기준으로 보면 원전 때문에 숨진 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불안감이 더 커지는 건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원전사고로 피난을 간 이재민들에 대해 도쿄전력이 보상안을 내놨다고.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피난자에 대해 4인 가족 기준으로 450만엔(약 6200만원)을 배상하기로 했습니다. 8월 말까지 배상금을 줄 계획입니다.
일자리를 잃은 경우 1인당 월 27만엔(약 350만원), 대피소에서 생활하게 된 사람들에게는 월 12만엔 등으로 세부계획을 정했습니다. 원전사고 때문에 집값, 땅값이 떨어져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별도로 피해액을 계산해 물어줄 계획이라고 하네요.
피해 복구가 될 때까지 계속 지급을 해줘야 하는 것이니 도쿄전력의 부담은 만만찮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집 잃고 직장 잃고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은 이들의 피해에 비하면 저런 배상금은 새발의 피겠죠.
배상을 받는 사람은 피난을 간 15만명을 포함해서, 40만~50만건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예상대로 간 나오토 총리가 물러나자 일본 정부는 다시 친 원전정책으로 돌아서는 분위기.

노다 요시히코 총리 지명자가 최근 월간 <문예춘추>에 ‘나의 정권구상’이라는 걸 발표했습니다. “2030년까지는 원자력기술을 계속 쌓아가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언급하면서 원전 해외수출은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한국정부의 논리와 똑같으니 비판하기도 면구스럽네요).
노다는 지난 7월 간 나오토 총리의 ‘탈원전’ 발언에 대해서도 “서둘러 추진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비판했었죠. 노다 정부가 공식 출범하면 아무래도 탈원전 정책은 퇴색될 것 같은데요. 노다 지명자는 원전 신규건설은 동결하겠지만 안전성이 확인된 원전은 재가동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안전성을 '확인'하고 가동하던 원전에서 지진이라는 재해를 만나 사고가 난 것 아닙니까. 과연 안전성이 '확인된 원전'이라는 일본 정부의 진단들을 앞으로 이웃나라들이 믿을 수 있을지...


일본 소방대원들이 지난 3월 22일 후쿠시마 제1원전의 4호기 원자로에 물을 뿌리고 있다. | 로이터


노다 지명자가 관료친화적인데다가 주변에 전력업계와 가까운 의원들이 많은 것도 전임 간 총리와 다른 점이자, 그의 결정에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노다의 새 내각은 파벌안배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던데.

와(和)의 정치라고 일본 언론들은 표현했다던데요. 당 핵심보직에 반대파 그룹인사들을 배치하는 ‘탕평인사’에 나섰습니다. 자신을 끝까지 지지하지 않은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 쪽 인맥과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 측근을 과감하게 기용한 겁니다. 일종의 거당체제, ‘노 사이드 정치’라고도 하네요.
당 간사장에는 오자와의 측근을 앉히고, 국회 대책위원장에는 하토야마 전 총리의 측근을 앉히기로 했습니다. 당의 핵심 요직 중 하나인 정책조사회장에는 경쟁자인 마에하라 세이지 전 외무상을 기여했습니다.

또 정책결정 과정에서 총리와 각료들보다는 당의 발언권을 확대하는 쪽으로 당정 시스템을 바꾸기로 했답니다. 전임 간 나오토 총리 때 내각이 모든 면에서 독주를 하면서 당의 불만이 컸다는 걸 인식하고 받아들인 거죠. 그래서 각료회의에서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당 정책조사회장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내각도 파벌안배로 구성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리더십을 원하는 국민들의 여론과는 좀 다른 것 아닌가.

노다의 당정 인사는 철저하게 파벌안배에 맞춰져 있습니다. 아무리 탕평인사다 화합의 인사다 포장을 한들, 이걸 선진적, 개혁적이라고 보기는 힘들 듯 합니다.
당직 인선에서는 당내 파벌 세력 순으로 자리를 배분했습니다. 120여명 의원을 거느린 최대 파벌인 오자와 그룹에는 정권 2인자인 간사장 자리를 준 건데요. 간사장은 당의 자금과 인사를 총괄하고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막강한 자리입니다. 이걸 줬으니 이제 오자와 쪽에서도 나를 밀어달라는 뜻이겠죠.
3인자인 국회대책위원장은 하토야마 그룹, 그와 비슷한 세력인 마에하라에는 정조회장 식이니 이걸 과연 화합의 정치라 볼 수 있을까 싶네요.
오자와 그룹은 최대 파벌이기는 하지만, 밀실 인사, 막후 정치에 검은 돈 냄새가 나는 오자와의 정치행보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진저리를 치고 있습니다. 간 나오토가 해왔던 게 오자와 식의 구태 정치를 벗어나겠다고 한 건데 이를 모두 뒤로 돌리는 느낌입니다.



-그렇게 파벌안배에 주력하다보면 민주당의 개혁정책들은 후퇴할텐데.
 
벌써부터 노다의 정권 운영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노다가 우파 성향이긴 하지만 간 나오토 진영과 함께 정치개혁, 세대교체의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그런데 당직인선에서는 전혀 그동안의 주장과 다른 세력에게 당권을 내준 건데요.
일각에선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노다는 5선 중의원 의원이지만 당 대표도 간사장도 정조회장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당을 장악하고 이끌 능력이 부족하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정치력이 있는 세력에 당을 맡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경력이 길지 않고 대중적 지지도가 낮은 노다가 총리직을 수행하려면 민주당이 힘을 합쳐 힘을 몰아줘야 하고, 그러려면 오자와나 하토야마 쪽을 끌어당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는 거죠. 반 오자와에 급급하다 국정의 파행을 자초했던 간 나오토를 반면교사로 삼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옵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자민당 정권의 되풀이가 수 있습니다. 원전정책만 봐도, 일본의 원전정책은 이해관계집단의 로비와 거기 밀착된 관료, 의원들에 휘둘려 지금처럼 방대해졌습니다. 노다는 그걸 뜯어고치지 않겠다는 거고요.
이해관계집단과 유착된 의원들을 일본에선 토건족, 무슨족 하면서 ‘족의원’이라고 부르죠. 족의원들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개혁으로 가는 길은 참 험난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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