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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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영환의 워싱턴 리포트

트럼프의 대변인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5. 17.

최근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션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이라고 말할 것이다.

 

역대로 백악관 대변인에게 방탄복을 취임 기념선물로 준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언론과 정권 사이에 낀 대변인 역할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는 게 미국 언론의 중평이다. 워싱턴포스트는 그를 “워싱턴에서 최악의 직업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워싱턴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이라고 평가한다.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자유로운 언론들에 맞서 입만 열면 거짓말인 도널드 트럼프를 대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울지 상상해보라. 거의 ‘미션 임파서블’이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주류 언론을 ‘가짜뉴스’라고 규정하고 언론과의 전쟁을 해왔다. 스파이서는 그 전쟁의 맨 앞에 서서 언론의 화살을 맞고 있다. 그의 첫 임무는 취임식에 역대 최대 축하객이 왔다는 트럼프의 거짓말을 뒷받침하는 일이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취임식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게 위성사진으로 증명됐지만 스파이서는 “하객이 역대 가장 많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트럼프는 근거도 없이 오바마가 자신을 도청했다고 주장했고, 스파이서는 근거를 내놓으라는 기자들의 추궁을 맨손으로 며칠간 버텨냈다. 기자들을 향해 “절대 고개를 가로젓지 말라”며 위협하고, “의도적으로 거짓 보도를 한다”고 도발도 했다. 덕분에 그는 코미디 프로그램 SNL 등에서 전 국민의 조롱거리가 됐다.

 

션 스파이서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3월 8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스파이서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한반도 배치에 중국이 반발하는 것에 대해 “지난 주말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서 보듯 사드 배치는 한국 방어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P연합뉴스

 

스파이서를 정말 딱하게 만드는 것은 세간의 조롱이 아니다. 그는 아마 미국 정부의 간판인 백악관 대변인이란 권력을 얻었으니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보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언론에 전해지는 트럼프의 평가는 항상 부정적이다. “트럼프는 스파이서 임명을 매일 후회하고 있다” “트럼프가 생각한 대변인은 스파이서가 아니었다”. 최근에는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있을 것이고 그 핵심 대상이 스파이서라는 보도가 계속 나온다. 본인은 최전방 전투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는데 후방에서는 지원은커녕 비난만 하고 있으니 미칠 노릇일 것이다.

 

트럼프의 대변인이란 자리는 누가 맡아도 고난이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많다. “스스로를 위대한 존재로 인식하는 메시아 콤플렉스가 있는 데다 양심과 공감능력이 없는”(영국 행동심리학자 조 헤밍스) 트럼프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은 트럼프 자신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바마의 수석 고문을 지낸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뉴욕타임스에서 트럼프의 대리인들은 결국 “거짓말쟁이 또는 바보처럼 보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좋아할 만한 대변인은 없을까. 트럼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독재자들을 좋아한다는 점에 착안해서 사례를 찾아보자. 세계 최고 독재자로 통하는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이 최근 아프리카·프랑스 정상회의 만찬에서 눈을 감고 졸고 있는 모습이 소셜미디어에 올라 논란이 됐다. 그러자 짐바브웨 홍보 담당관은 “대통령은 잠시 눈을 쉬게 한 것일 뿐이지 잠을 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당초 대변인으로 고려했던 켈리언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도 ‘대안 사실’이란 새로운 용어까지 만들어서 트럼프의 역대 최다 취임식 참석자 주장을 옹호했다. 물론 이런 경지에 이르기가 쉽지는 않다. MSNBC의 간판 진행자 미카 브레진스키는 15일(현지시간) 콘웨이도 지난해 대선 때 카메라 앞에서는 트럼프를 적극 옹호했지만 카메라가 꺼지면 “내가 하는 말이 너무 더러워서 샤워를 해야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그녀는 이제 그런 것에 익숙해진 것 같다”는 평도 빼놓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스파이서는 트럼프의 신뢰를 얻기에는 아직 너무 양심적인 게 아닌지 모르겠다. 슬픈 미국의 현실이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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