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북·미 회담과 ‘협상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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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특파원 칼럼

[특파원칼럼]북·미 회담과 ‘협상의 기술’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4. 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절친 데니스 로드맨은 지난해 여름 평양을 방문했다. 로드맨이 가져간 선물 가방에는 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저서 <협상의 기술>이었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5월에 열릴 예정이다. 김정은은 <협상의 기술>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트럼프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까.

 

트럼프는 말한다. “가장 좋은 것은 힘의 우위에서 협상하는 것이다. 레버리지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트위터에선 자신의 책 내용을 이렇게 인용했다. “레버리지. 그게 없다면 협상을 하지 마라.” 트럼프는 전례 없이 강력한 대북 압박과 제재를 레버리지로 여긴다. 김정은이 대화를 먼저 제안한 것도 최대의 압박 정책 때문이란 게 백악관의 판단이다. 새라 허커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최대의 압박 작전 덕분에 오랜 시간 처음으로 미국이 약자가 아닌 강자의 입장에서 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미 정상회담 합의 후 북·중 정상회담이 열렸고, 남북관계도 급진전되고 있다. 트럼프로선 한국과 중국이 대북 압박 공조에서 벗어나 김정은의 숨통을 터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지난달 29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안에 대한 서명을 “북한과의 협상이 타결된 이후로 미룰 수 있다”며 압박했다.

 

“뭔가 비범한 것을 요구하라.” 트럼프는 1980년 재선에 실패한 지미 카터를 만난다. 카터는 도서관 건립을 위해 모금운동 중이었고, 트럼프에게 당시 500만달러를 요구한다. 트럼프는 어이가 없었지만 카터가 왜 대통령이 됐는지는 알게 됐다고 말한다. “카터는 대통령 자격이 없었지만 보통을 넘은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는 용기, 배짱, 남자다움이 있었다.” 트럼프가 무리수를 두는 데는 다른 목적이 있다. 모든 수입 철강에 일괄적인 폭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결국 한국이나 멕시코 등과의 개별 무역협정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카드였다. 북·미 협상 과정에서 트럼프는 예상 밖의 카드를 꺼내 놓으며 관련국들에 충격을 줄 수도 있다.

 

트럼프는 “가끔은 대결이 유일한 선택일 때가 있다”며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겁먹지 마라. 너의 입장을 고수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당당하게 서 있으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유연성의 중요함을 인정한다. “나는 또한 유연함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한다. 절대 하나의 목표나 하나의 접근법에 집착하지 않는다.” ‘화염과 분노’ 경고를 접고 전격적으로 협상을 택한 이상 과감한 타협으로 성과를 내려할 것이란 관측도 많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외교적 성과가 필요한 만큼 핵무기를 미국으로 실어나를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의 무력화만 달성해도 타협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언제 테이블에서 걸어 나올지를 알아라.” “협상에서 범할 수 있는 가장 잘못된 행동은 협상 타결에 절박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트럼프는 최근 김정은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을 잇따라 표시하면서도 협상 결과가 “좋지 않다면 걸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가 강조한 협상의 기술 중 하나는 기대보다는 부정적 결과에 대비하는 것이다. “나는 항상 최악을 예상하면서 협상에 임한다. 최악에 대비하면, 최악의 결과와 함께 살 수 있고, 좋은 결과는 항상 스스로를 돌본다.”

 

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 정권 교체를 주장해온 강경파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국무장관에 지명하고,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설파해온 네오콘 존 볼턴 전 유엔대사를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했다. 세기의 담판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협상 실패가 가져올 후유증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의 협상의 기술이 제대로 발휘돼 외교적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게 절실한 시점이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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