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재일 한인사회에 몰아친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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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서의동 특파원의 도쿄리포트

[특파원칼럼]재일 한인사회에 몰아친 ‘후폭풍’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8. 29.

서의동 도쿄 특파원

 

“마치 세입자가 집주인 눈치를 보는 기분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꽤 심각했다. 일본에 온 지 30년이 다 돼 가는 이 한국인 사업가는 한·일 갈등이 본격화된 이후 일본 고객들을 상대할 때 괜한 위축감이 든다고 했다. “한 일본인은 내게 ‘테러를 조심하라’고 합디다. 물론 친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했을 거라고 좋게 생각하려 해도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사회 분위기에 민감한 일본인들이 앞으로 대놓고 한류 콘서트장을 찾을 수 있겠어요? 신오쿠보의 코리안타운에서 우익들이 시위를 벌이면서 한류팬들에게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걸 보면 한류붐이 빠르게 식을까 걱정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요구 발언이 촉발한 한·일 갈등이 일본의 한인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도쿄 신오쿠보 거리의 한류 상품점, 식당 등의 매출은 10~20%가량 줄어들었다. 한국 연예인들의 공연, 팬미팅, 한류드라마의 사진전시회도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한 한류 관계자는 “한 방송사가 유명가수 공연의 방영권을 샀다가 ‘분위기 안 좋다’며 방영을 중단한 사례도 있다”고 귀띔했다. 한 지방도시가 한류 연예인을 홍보대사로 임명한 뒤 임명식을 하려다 취소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경향신문DB)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심리적 파급효과는 만만치 않다. 사전준비를 모두 마친 이벤트들이 줄줄이 중단되다 보니 신규 이벤트는 기획할 엄두조차 못 내는 형편이다. 일본의 한 주간지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류팬을 그만두려 한다’는 응답자가 10%에 달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한인사회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신오쿠보의 한 한국식당 주인은 “충성도가 높은 한류팬들이야 별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한류팬의 신규 유입은 기대하기 힘든 것 아니냐”고 물었다.


물론 한·일 민간교류가 정치에 의해 망가지는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다소 시일이 걸리겠지만 예전 상태로 복원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많다.


일본 주요 일간지에서 한국을 오래 담당해온 기자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상륙, 올림픽 한·일 축구전이 있던 기간 한국에 머물며 겪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택시를 몇 번 탔는데 운전기사들이 독도 이야기는 한마디하지 않고, 축구 이야기만 하더군요.” 한국 취재경험이 많은 이 기자는 “예전 같았으면 독도 이야기로 진작에 언쟁이 벌어졌을 것”이라며 놀라워했다. 대통령과 총리가 ‘애들 싸움’을 하건 말건, 민간 차원에서는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가 깊어지며 바닥이 탄탄해지고 있다.


관심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양국이 이른 시일 안에 ‘출구’로 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로선 냉각기를 갖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정연한 논쟁이 아니라 총리 친서 반송 공방에서 보듯, 감정과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면서 양보와 타협점을 찾기도 쉽지 않다. 싸움이 끝난 뒤 한국은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겠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을지 모른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봉인돼 있던 ‘내셔널리즘’이 이번 사태로 한껏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태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뒤엔 반드시 손익계산서를 작성해봐야 할 것 같다. 독도의 분쟁화 가능성을 키웠고, 일본 우익들의 입지를 강화시켰으며, 일본 내 친한파들의 설자리를 빼앗은 것 외에 독도 방문으로 우리가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인지. 당장 생업에 타격을 입고 있는 신오쿠보의 교민들은 지금부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 손해배상은 누구에게 청구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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