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중국의 ‘우려스러운 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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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중국의 ‘우려스러운 내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8. 18.

지난 12일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12년 11월15일 18차 공산당 대회에서 총서기에 등극한 후 1000일째 되는 날이었다. 한국에서는 그를 ‘주석’, 영어권 국가들은 ‘프레지던트(President)’라고 부르지만 중국에서는 ‘총서기’란 호칭을 많이 쓴다. 공산당이 중국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압도적이다. 중국 매체들은 우리 언론처럼 특정 기간이 지났다고 해서 지도자의 공과를 특별히 다루진 않는다. 중국에서 현직에 있는 지도자를 평가하는 것, 특히 과(過)를 거론하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공교롭게도 그날 밤 톈진(天津)의 항구에서 사망·실종자수를 포함해 200명 이상의 인명피해를 낸 대폭발 사고가 있었다. 앞서 상하이에서는 신년맞이 행사에서 36명이 숨진 압사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6월초에는 ‘중국판 세월호 사고’로 불리는 양쯔강 유람선 사고로 440여명이 희생됐다. 톈진 폭발 사고에 묻혔지만 이달에는 산시(陝西)성에서 산사태로 60여명이 매몰됐다.

잇따르는 재난 속에 많은 중국인들이 망연자실하고 외국에서도 애도가 쏟아졌다. 나라 크기로 보나 인구로 보나 중국에서 대형 사고가 터지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긴 하다. 그러나 양파껍질 까듯 인재의 측면이 끝없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국제사회에서 갈수록 높아지는 중국의 위상과 달리 국내에서는 백성들의 시름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화려한 외치(外治), 우려스러운 내치(內治)’가 요즘 중국의 모습이다.

시 주석은 총서기에 등극하며 전 세계에 ‘중국의 꿈’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선언했다. 국제무대에서 위풍당당한 그의 모습에 중국인들은 열광했다. 미국이 반대하는 가운데 한국을 비롯해 독일과 영국, 프랑스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끌어들였다. 2022년 동계 올림픽 유치도 눈부신 외교적 성과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협정문 서명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최경환 경제부총리)_경향DB


나라는 이처럼 강해지고 있지만 국내로 눈을 돌리면 일반 국민들, 특히 중산층 이하의 삶은 고달프고 불안하다. 얽히고설킨 경제문제로 민초들의 고통은 깊다. 국가와 관영 언론이 합작해 만든 증시 광풍에 휩쓸려 들어간 개인투자자들은 주가 폭락으로 좌절하고 있다. 잇단 대형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의 목숨을 잃은 유족들은 할 말을 잃었다. 유언비어 확산 금지란 명목으로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는 억압되고 유족들은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당국의 무성의한 태도에 분노하고 있다. 많은 대형 사고들은 안전불감증에 따른 인재로 드러나고 있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중국이 과거의 재난에서 얼마나 많은 교훈을 얻고 구태를 개선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중국인들은 자국 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시대로 청나라의 강옹건성세(康雍乾盛世) 130여년을 꼽는다. 강희제(康熙帝), 옹정제(雍正帝), 건륭제(乾隆帝)로 이어지는 시기에 청나라는 눈부신 부흥을 일궜다. 특히 강희제의 리더십과 용인술을 중국 지도자들은 배우고 싶어한다. 1661년부터 1722년까지 61년간 중국을 다스린 강희제는 중국 역사상 최전성기의 서막을 연 군주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안민(安民)이야말로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생각했다. 경제와 민생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천하를 편안하게 다스리려면 백성들이 원하는 바를 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는 다음달 3일 2차 대전 승전 70주년 열병식이 성대하게 열린다. 물론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열병식을 통해 많은 중국인들은 70년 전의 중국과 오늘의 중국을 비교하며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재난이 잇따라 터지면서 당과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의구심과 불신이 커지고 있다. 적지 않은 중국인들은 지금 “강한 중국이 아니라 개인의 안전과 생명권이 보장되는 나라가 바로 중국의 꿈”이라고 외치고 있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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