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트럼프의 ‘좋았던 옛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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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트럼프의 ‘좋았던 옛 시절’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3. 22.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인기를 얻는 요인 중 하나는 ‘좋았던 옛 시절(good old days)’에 대한 향수이다. 트럼프 스스로 그 좋았던 옛 시절을 자주 언급한다. 그는 최근 한 유세에서 흑인 시위대가 경찰에 끌려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좋았던 옛 시절에는 법 집행이 이보다 더 신속하게 이뤄졌다. 하지만 요즘은 모두가 정치적 올바름을 중시한다. 우리나라는 완전 지옥이 되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 때문이다.”

또 다른 유세에서도 그는 시위대가 끌려나가자 “옛날에는 저런 사람들은 걸어나가지 못하고 들것에 실려갔다. 그냥 얼굴에 펀치를 한 방 먹였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부분 백인인 청중들에게는 이런 얘기가 그렇게 통쾌한 모양이다. 무엇이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을 기괴하게 만들어 버렸을까. 답을 하려면 좋았던 옛 시절과 트럼프 지지자들의 정체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유튜브에 ‘트럼프와 좋았던 옛 시절’을 검색하면 흑백분리가 당연시되고 백인이 흑인을 두들겨패는 영상들이 올라와 있다. 이들은 정말 흑인들을 마음껏 패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트럼프뿐 아니라 모든 공화당 후보들이 좋았던 옛 시절로 꼽는 때는 로널드 레이건 시대이다. 트럼프 말처럼 그때 미국은 위대했고, 아메리칸 드림이 살아 있었고, 교회를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도 살아 있었다. 하지만 레이건은 자본의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바닥으로의 경쟁’을 본격화한 장본인이다. 레이건이 만든 경로는 민주당의 빌 클린턴 정부 때 각종 무역협정 등 제도로 확립되면서 강화됐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외국인 기자 입장에서 막상 인터뷰를 하려고 하면 트럼프 지지자들 중 우호적으로 대해주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미국 주류 언론들에도 트럼프 지지자들은 연구과제인 것 같다. 뉴욕타임스 필진 데이비드 브룩스는 트럼프에 강하게 반대한다면서도 언론인으로서 트럼프 지지자들의 분노를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연설을 하고 있다_AP연합뉴스

트럼프 지지자들을 거칠게 요약하면 대학 졸업장이 없는 백인 남성들로, 자기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해밀턴프로젝트 조사에 따르면 1990년에 대학 졸업장 없는 남성들의 정규직 비율은 76%였지만 2013년에는 68%로 떨어졌다. 랜드연구소 조사 결과 ‘나 같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 중 86.5%가 테드 크루즈보다 트럼프를 더 지지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응답도 더 많았다. 따져 보면 트럼프의 공약이 부자 증세는 아니지만 크루즈에 비해 부유층 감세 폭이 훨씬 작다.

이들에게 좋았던 옛 시절이 흑인, 여성, 성소수자에게도 좋았던 시절은 아니다. 다만 트럼프 지지자들이 지난 30년간 제조업 일자리의 개도국 유출 등으로 지위가 상대적으로 많이 하락한 집단이라고 할 수는 있다. 그들에게 좋았던 옛 시절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일할 기회가 많고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버는 것이다. 그마저도 점점 어려워지니 소수자들을 희생양 삼아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사실 이들은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부자들에게 많은 세금을 걷어 복지를 강화하겠다는 버니 샌더스를 지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트럼프와 샌더스 사이에서 고민하는 미국인들을 많이 봤다. 샌더스가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에 비해 열세이지만 경선을 완주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는 호시절에 좋은 집안 출신 백인 남성으로 교육 잘 받고, 각종 연줄과 로비력을 활용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0.1% 이내 부자다. 그런 그가 서민의 분노와 공포를 읽어내 분출하게 만드는 것은 비상한 능력이다. 그렇다고 그가 좋았던 옛 시절을 얘기하며 분노할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손제민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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