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샵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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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포토샵 교장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6. 14.

청두시의 한 고등학교 졸업 사진이 중국 전역에서 화제가 됐다. 사진을 본 이들은 분노했고 학생들의 마음에는 생채기가 났다.

 

청두 룽취안(龍泉)고등학교 고3 학생들은 지난 5월 졸업 앨범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인화된 사진 속에는 촬영할 때는 없던 교장의 모습이 박혀 있었다. 사진편집 프로그램인 포토샵으로 교장의 사진을 슬쩍 끼워 넣은 것이다. 학생들은 “교장선생님, 그렇게 바쁘세요? 이거 졸업 사진인데 어떻게 조작할 수 있죠?”라고 분개했다. 비난이 거세지자 학교 측은 재단에 초·중·고등학교가 모두 있다 보니 교장이 반마다 다니며 단체사진을 찍기 힘들었다고 해명했다. 올해 졸업하는 고3 학생들만 28개 반이나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장은 이 중 2개 반인 엘리트반 학생들과는 직접 사진을 찍은 것으로 확인됐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게 ‘촬영 차별’을 한 것이다. 가장 순수해야 할 학교에서 숭고한 교육의 정신이 무너졌다는 분노가 쏟아지고 있다.

 

중국 교육계도 성적 우선주의냐 인성을 중시하는 인재 양성이냐 하는 고민에 부딪혀 있다. 난제를 풀기도 전에 취업난이 심화되고 경쟁이 격화되자 성적 우선주의에 힘이 실린다. 문제는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수가 됐다는 사실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뜻의 중국 속담인 ‘까마귀 둥지에서 봉황이 난다’는 실현되기 힘들다. 지난달 상하이의 유명 사립초등학교인 양푸(陽浦)소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는 학부모들은 지능(IQ) 테스트를 치러야 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양육 상태를 상세하게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또 다른 형태의 ‘연좌제’다.

 

상하이의 또 다른 사립학교인 칭푸(靑浦)세계외국어학교는 신입생 선발 과정에서 조부모의 직업과 학력을 조사했다. 학부모들에게는 최종 학력이 아니라 최초 입학 대학을 따로 물었다. 정부기관이나 기업체 임원이 되면 명문대 대학원에 쉽게 입학할 수 있기 때문에 최종 학력은 변별력이 없다고 본 것이다. 좋은 집안 자제를 가려 뽑기 위해 학업 능력 파악과는 무관한 질문에 몰입했다. 교육의 기회는 균등해야 하지만 초등교육부터 부모의 지능, 학력, 직업, 재력으로 갈라진다.

 

올해로 중국 수능인 가오카오(高考)가 회복된 지 40년이 됐다. 대학 입학시험은 문화대혁명(1966~1977년) 10년간 사라졌었다. 당시 학생들은 지식 청년을 노동 현장으로 보내는 하방(下放) 정책에 따라 농촌에서 일하는 것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고등학교나 대학에 쉽게 갈 수 없었고 추천제만이 유일한 입학 통로였다. 학업 성적보다는 당에 대한 충성이 우선시됐다.

 

신경보는 “가오카오는 펜으로 찬란한 미래를 그릴 기회”라면서 “4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게 가오카오란 사치스러운 희망에 불과했다”고 했다. 환구시보는 “가오카오가 수천, 수만명의 중국 청년들에게 운명을 개척할 기회를 줬다”고 평가했다. 1977년 입시제도가 되살아난 후 대학에 들어간 이들은 현재 중국을 이끄는 지도자가 됐다. 시진핑 주석도, 리커창 총리도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칭화대, 베이징대에 입학해 대학 교육의 혜택을 누렸다.

 

그러나 40년간 중국이 경제적으로 무섭게 성장하면서 교육은 운명을 개척할 기회가 아니라 또 다른 부의 상속 방법으로 변형되고 있다. 교육은 인간의 존엄을 세우고 국가의 명맥을 이어가게 한다. 교육이라는 공정한 계층 이동 통로가 사라진 사회는 암울하다.

천바오셩 교육부장(장관)도 문화대혁명이 끝난 이듬해인 1978년, 22세에 베이징대에 입학했다. 그는 중국의 교육이 상식, 본분, 초심, 꿈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기본’을 강조한다. 그러나 지금 중국의 교육은 상식적이고 본분에 충실한가, 초심을 잊지 않고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신이 없을 것이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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