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번지는 반소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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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프랑스에 번지는 반소비주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6. 14.

프랑스 사람들에게 애초부터 그런 기질이 없었던 건 아니다. 거리에 버려진 물건 주워서 쓰기 챔피언이고, 벼룩시장이라는 꼬질꼬질한 잡동사니 시장을 일찍이 관광지로까지 승화시키기도 했으며, 사는 것보다 뚝딱거리며 고치고, 만들어 쓰는 걸 좋아해서 백화점 지하가 통째로 자재 판매코너가 되기도 하는 브리콜라즈(집안의 목공일)의 천국이니까. 그러나 지난 한 해 동안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구입한 소비자의 51%가 중고를 산 바 있다는 통계는 평소의 기질을 뛰어넘은, 급격한 사회적 흐름이 있다는 것을 감지하기에 충분하다.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경제위기만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사회와소비 연구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52%의 프랑스인들은 과거의 과시적 성향과 절연하고, 보다 ‘좋은 소비’를 열망하며 적게 소비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다. 이들이 말하는 소위 ‘좋은 소비’란 에콜로지스트로서 환경보호를 극대화하는 소비,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된 식품소비, 1회용품이 아닌 오래 쓸 수 있는 상품 위주의 소비 등을 말한다. 유기농·공정무역·중고품 이 세 가지는 오늘 프랑스인들의 소비패턴을 규정하는 키워드가 됐다. 프랑스 소비자들의 친환경적·합리적·이성적인 소비로의 변화는 경제적 상황의 위축뿐 아니라 개인적인 신념에 따른 변화라고 보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개인 수요자와 공급자를 쉽게 연결해주는 인터넷의 발전으로 중고시장의 성장은 극대화됐다. 이러한 프랑스 사회의 소비패턴에 불어온 새 바람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연구소 측은 전망한다.


프로방스 지역 릴 쉬르 라 소르그의 길가에 아기자기하게 펼쳐진 프랑스 최대 벼룩시장 생투앙 (사진제공 : 권순복)


비드 그르니에(Vide Grenier)가 급격히 늘어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비드 그르니에는 다락방 비우기라는 말 그대로, 집 안에 굴러다니던 잡동사니들을 끌고 나와 길에 내놓고 헐값에 처분하는 것을 말한다. 거의 모든 동네에서 봄, 가을이면 주말 한나절 동안 비드 그르니에가 열려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들을 1~2유로에 팔아넘긴다. 엄마, 아빠가 물건들을 팔고 있으면 아이들도 그 옆에 좌판을 펴고,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 인형 등을 판다. 한쪽에선 집에서 구운 케이크와 커피, 집에서 빚은 사과주를 들고 나와 팔기도 하면서 비드 그르니에는 그야말로 마을 잔치가 된다.


약 7~8년 전부터 비드 그르니에의 숫자와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급격한 증가를 보도한 RUE89지는 이 비드 그르니에를 “모든 것이 뒤섞이며 낭비에 저항하는 투쟁의 장”이라 묘사한다. 모든 계층, 모든 종류의 물건이 한자리에서 만나며 이들은 결국 하나같이 물건을 재활용하는 것에 바쳐지는 혼합의 축제이자 소비에 반하는 투쟁의 장이기도 하다는 것. 비드 그르니에가 차지하는 경제 비중이 커지자 여기에 슬쩍 끼어들어 세금도 안 내고 장사하는 전문업자들의 탈세가 문제가 돼 최근에는 개인이 연 1회 이상 비드 그르니에에서 장사를 할 수 없게 하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감지되는 새로운 경향의 진원지는 결국 경제위기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단지 지갑이 전보다 얇아졌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들이 겪는 위기의 실체는 결국, 부도덕한 자본의 흥청거림에 모두가 놀아난 것이라는 자성이 사회 안으로 스며든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프랑스 중고시장의 고속성장. 그것은 소비시장 전체의 구조적 변화를 대변하며 이는 과소비에 대한 완강한 심리적 거부와 협력적, 합리적 소비의 출현 속에서 확고한 경향으로 자리잡고 있고 ‘반소비주의’는 이 새로운 경향의 슬로건이라고 제르피 연구소는 밝힌다. ‘좋은 소비’와 ‘중고의 무한 재활용’은 자본의 독재가 파괴해 버린 것들을 되살려낼 수도 있을까? 비드 그르니에의 느긋하고 평화로운 축제가 지금처럼 계속 사람들을 매혹한다면, 축제는 무덤에서 진주를 캐낼 수도 있지 않을까.

프랑스의 시장 (경향DB)


목수정 | 작가, 파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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