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극우단체, 위험한 모험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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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프랑스 극우단체, 위험한 모험의 종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7. 29.

38도까지 치솟는 살인적 폭염으로 들끓는 올여름, 프랑스 극우파들에게는 간담이 서늘했던 잔인한 여름으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24일 내무부 장관 마누엘 발스는 극우단체 ‘프랑스의 과업’과 ‘젊은 국가주의자’를 강제 해산한다고 발표했다. 7월 초 이미 3개 극우단체의 해산이 발표된 바 있으니, 한 달 사이 극우단체 5개가 사라진 셈이다. 


발스 장관은 “노골적으로 외국인 혐오와 유태인 혐오를 선동하고, 나치의 폐해를 부인하며, 나치와 협력했던 프랑스의 비시 정부와 나치 협력자들을 찬양하고, 비시 정부의 수장 페탕에게 경의를 바쳐왔다”고 이 단체들을 해산하는 이유를 밝혔다.


극우단체 ‘프랑스의 과업’의 출발은 한 집안사에서 시작된다. 설립자 피에르 시도스의 아버지는 나치 협력자였다. 시도스의 아버지는 1945년 해방을 맞이해 총살당하고, 피에르 시도스는 두 형제와 함께 1949년 ‘젊은 국가’라는 이름의 극우정당을 창당한다. 


“공화국 전복”을 표방하던 이 정당은 1958년 정부에 의해 강제 해산된다. 그리고 1968년, 프랑스의 모든 진보적인 생각들이 불꽃처럼 찬란하게 거리에서 작렬하던 그 시절, 그는 ‘프랑스의 과업’을 창립한다. ‘프랑스의 과업’은 테러와 린치의 과업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캠프도 갖추고 군대조직처럼 운영되어 왔다. 함께 해산된 ‘젊은 국가주의자’는 ‘프랑스의 과업’의 청년조직으로 행동대원들을 키워내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두 단체의 대표들이 모두 극우정당 국민전선(FN)에서 축출당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각각 히틀러를 향해 경례하는 자신의 사진을 유포하고, “나는 반유태주의자”라고 공식 석상에서 선언한 것을 이유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전선에서 쫓겨난다. 분명, 이들과 같은 색깔을 가진 극우정당이 이들을 축출해야 했던 이유는 뭘까. 아버지 르펜에게 대표 자리를 물려받은 마린 르펜이 전략적으로 인종주의를 자제시키고, 반유럽·반금융자본주의·실업문제 등 보다 대중적인 이슈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뤄진 조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이유는 1881년부터 존재해온 인종차별금지법 때문이다. 노골적인 인종차별 발언은 정당의 존립 자체를 뒤흔들 수 있다. 5개 극우단체들을 일시에 공중 분해시킬 수 있었던 근거도 바로 이 법이다.


100년도 더 된 법이 있었음에도, 그 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조직이 오늘에서야 철퇴를 맞게 된 까닭은 뭘까. 그것은 우파의 대동단결을 가능케 했던 ‘동성애자 결혼법’을 둘러싸고 폭발하던 우파의 정세와 관련이 있다. 지난해 말부터 가톨릭 세력, 극우세력, 동성애 혐오세력 등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30년 만에 대규모 우파 시위대를 형성한다. 이들 틈에 끼어 과격한 행동을 일삼던 극우단체들은 점점 대담하게 몸집을 키웠고, 급기야 공중파 방송에 초대되어 자신들의 놀라운 얼굴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지난 6월, 이 극우단체 회원들이 인종차별 반대단체의 일원인 한 청년을 살해해 이들은 종말을 자초했다.


동성결혼 합법화 방안 반대 시위에 참석한 프랑스 여성 (로이터)


한국의 극우파들에게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우상이 있다면, 프랑스의 극우파들에게는 히틀러와 나치에 협력한 비시 정부의 수반 페탕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지배하던 파시스트의 수장과 그들에게 협력하던 하수인들을 숭배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반면 프랑스에는 19세기에 이미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져, 이들이 사회가 용인하는 선을 넘어설 경우 이들을 단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차별금지법은 우파들의 처절한 반대에 부딪혀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이라는 큰 차이점이 있다. 차별금지가 아직 상식에도 이르지 못한 우리 사회, 일베는 이러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경향DB)



목수정 | 작가, 파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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