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협력의 양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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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협력의 양면성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10. 20.
유로 경제권의 위기와 미국 경제의 부진이 겹치면서 세계 동시 불황 또는 세계공황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 충격으로 한국 주식시장의 하락률은 주요국 중에서 유난히 크고, 원화가치 하락으로 물가상승이 우려되고 있다. 일본도 엔화가치의 초강세로 주식시장이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우량기업들의 주가가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엔고 기조가 지속되면 기업의 해외이전 본격화가 불가피해지면서 일본 경제가 공동화될 수 있다는 불안도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기업의 한국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유럽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미국과의 FTA가 비준되면 한국은 재난과 전력 부족을 피하려는 일본 기업에 리스크(위험) 회피의 주요 파트너가 될 것이다. 한·일 FTA 교섭도 활발해지고 있으나 대일적자 기조가 완화될 전망이 없는 한 한국이 체결을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에 대한 일본 기업의 투자확대, 소재·부품산업의 기술이전과 공동개발로 수입대체 효과가 기대되면서 무역불균형이 시정될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이처럼 한·일 경제관계로 좁혀서 보면 양국간에는 상호보완 관계가 확대되고 있다. 일본의 대지진과 세계 동시 불황이 공교롭게도 한·일 협력의 추진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재평가 움직임은 최근 노다 요시히코 내각의 주요 각료와 민주당 간부들의 방한이 이어지고, 노다 총리가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한 것에서도 명확하다.


다만, 일본의 한국 중시 태도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가 호전됐는지를 물으면 반드시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다. 양국의 국가 기본전략과 국내 사정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일본이 한국에 접근하는 의도는 중국 견제라는 외교전략과 한·미·일 결속 강화에 있다. 센카쿠열도 분쟁을 계기로 중국의 역내 대국화와 해양 진출 가능성에 대한 일본의 경계감은 깊어지고 있다. 반면 한국에 한·미·일 대 북·중이라는 신냉전체제가 출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과 글로벌한 ‘다원적 전략관계’를 구축하는 한편 중국과도 호혜적 파트너십을 만드는 것이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중심인 한국에 바람직한 국제환경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일 양국의 외교전략에 차이가 생기는 것은 부정할 수 없고, 이를 이른 시일 내에 메우기도 곤란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중·일, 한·중, 미·중관계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일본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가를 둘러싼 움직임이다. 경제자유화와 글로벌화에서 뒤처진 일본은 노다 내각 출범 이후 TPP 참가 쪽으로 급격히 움직이고 있다. TPP가 중·미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포함하는 다국간 협정이긴 하지만 일본이 참가할 경우 그 본질은 미·일 중심의 경제연계협정(EPA)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다국간 협정의 모양새를 띤 미·일 중심의 대중국 방어망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중국이 TPP 동향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한국이 관망자세를 풀지 않는 것도 이런 신경전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응해 한국은 대중 FTA 교섭을 본격화하고, 일본과의 FTA 또는 EPA의 교섭조건을 제시하는 선택도 할 수 있다. 한국이 한·미관계를 반석 위에 올리면서 동시에 중국과의 연계강화를 꾀하고, 일본과의 교섭에 임하는 것은 한국의 대외교섭력을 높이는 차원 또는 안전보장과 국제경쟁력 확보에 필요불가결한 선택이다. 

대외적인 관계뿐 아니라 국내 요인에서도 한·일관계의 극적 호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다. 독도 영유권 문제, 위안부 문제에서 한·일 간에는 큰 틈이 있고, 양국내 여론에는 미묘한 공기가 흐르고 있다. 대지진과 원전사고, 만성적인 디플레이션 등으로 일본에는 국력쇠퇴에 대한 위기의식과 국위발양(發揚)형 논조가 강해지고 있다. 게다가 당내 기반이 약한 노다 정권이 타협의 여지를 보이는 것은 여론과 야당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영토문제와 역사문제를 포함한 대일 요구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한·일관계는 경제관계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국민 간 상호이해와 국가 간의 협력에 큰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 해도, 양국은 엇비슷한 사회문제를 끌어안고 있고, 그 해결을 위한 민간 차원의 연대·협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빈곤과 격차, 청년실업과 높은 자살률, 사회보장과 재정문제, 원전 안전성과 자연·재생에너지 개발 등 두 나라 국민은 동일한 과제에 직면해 있고, 그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도 시민사회의 교류를 확대할 필요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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