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2200만 ‘유커 인해전술’…중국의 무서운 전략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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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1억2200만 ‘유커 인해전술’…중국의 무서운 전략무기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3. 10.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8일 기자회견에서 향후 필리핀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질문에 유커(游客·중국인 관광객)를 꺼냈다. 왕 부장은 “양국 협력이 가속도를 내면서 이전에 지체됐던 시간을 보충하고 있다”며 “지난해 10월부터 반년도 채 안돼 필리핀으로 가는 중국 단체관광객이 1000개팀 가까이 늘었다”고 답했다.

 

중국이 막대한 숫자의 유커를 전략 무기화하고 있다. 유커의 거대한 소비력을 경제보복 수단으로 활용하거나, 혹은 보상 수단으로 쓰는 것이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으로 악화됐던 중국과 필리핀 관계는 반미·친중국 성향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취임 후 크게 개선됐다. 지난해 10월 두테르테가 베이징을 찾자 중국은 필리핀 다바오, 비사야, 민다나오섬 항공 노선 신설 등 관광 교류 확대에 합의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이 중국에 불리하게 나온 후 망고 불매운동까지 벌인 중국이, 두테르테의 제스처를 보고 ‘유커’라는 당근을 준 것이다.

 

필리핀으로 가는 중국 관광객은 크게 늘었다. 마닐라타임스는 지난 1월 필리핀에 온 유커가 지난해 1월보다 76%나 늘어 국가별 관광객 수 3위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차이나트래블뉴스는 지난해 11월과 12월에도 필리핀으로 떠난 중국 관광객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8%, 20% 증가했다고 전했다.

 

출처: 경향신문DB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문제로 한국과의 갈등이 심화되자 중국 당국이 꺼내든 보복카드는 관광 중단이었다. 롯데그룹이 사드부지를 제공한 직후 중국은 한국행 단체·개인관광, 크루즈 관광상품 판매를 전면 중단시켰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은 1720만명이며 이 중 절반 정도인 806만명이 중국인이다.

 

춘제(설) 연휴였던 1월27일부터 2월2일 사이에 해외로 떠난 중국인은 총 615만명으로 세계 최대 관광객 송출국임을 재확인시켰다. 중국 당국은 춘제 기간에 한국행 전세기 운항 신청은 불허하면서 라오스와 캄보디아에는 전세기를 띄우게 허용했다. 지난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당시 중국의 입장을 적극 지지했던 나라들이다.

 

중국은 대만과 양안갈등을 겪을 때에도 어김없이 ‘여행금지령’을 채찍으로 삼았다.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지난해 5월 취임하자 여행 제재에 나섰고, 대만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은 넉 달 새 30%가 줄었다. 국경절 연휴 대목이던 지난해 10월에는 대만에 가는 중국인 수는 전년 대비 55%나 줄어들었다. 관광업계 종사자 2만명이 대만 총통부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이자 해협관계협회장인 천더밍(陳德銘)은 지난 4일 “대륙을 상대로 사업하는 대만인들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는 게 기본조건”이라고 했다. 관영 언론들은 대만 관광버스 사고 등을 집중 보도하면서 위험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2012년 일본과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분쟁 때에도 비슷한 보복이 있었다. 일본을 찾은 중국 관광객 수는 2012년 9월부터 11개월간 월평균 28.4%씩 줄었다.

 

중국이 관광객을 무기로 삼을 수 있는 것은, 관광객 숫자가 많기도 하지만 관광산업이 여전히 정부 통제하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여행사총사(CTS)와 중국국여(CITS) 등 대표 여행사들은 대부분 국유기업이다. 관영언론을 통해 제주도 유커 입국 거부 같은 부정적 뉴스를 집중보도하면서 여론몰이를 하기도 쉽다. 쏟아져오는 유커에 열광하던 한국 관광업계는 사드 제재 대응이라는 고민거리를 안게 됐다. 지난해 한강시민공원에서 열린 중국인 8000명의 삼계탕 만찬, 인천 6000명의 치맥 파티 같은 이벤트는 당분간 보기 어렵게 됐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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