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소녀가 들춰낸 프랑스의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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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15세 소녀가 들춰낸 프랑스의 위선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10. 25.

교육이란 단어는 차마, 불의와 위선을 그 성스러운 치맛자락 속에 감추지 못한다. 아이들을 위한 책 속에,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찬양과 이민자 탄압에 대한 긍정을 담지는 못한다. 우린 아이들에게 하나뿐인 지구를 보호하라고, 세상의 모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프랑스의 모든 학교 정문 위에는 자유, 평등, 그리고 박애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 이 세 가지 혁명의 정신을 잊은 지 오래인 듯한 이 시절에도, 아이들만은 이 세 가지 정신을 꿀꺽꿀꺽 삼키고 있었던가 보다.

프랑스 고교생들은 사회가 그들이 배운 당위를 배반하자 한순간도 머뭇거리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와 외쳤다. “축출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우린 모두 이민자의 자녀”라고, “인권의 나라 프랑스는 어디에 있느냐”고, “사회엔 관용이, 학생들에겐 교육이 필요”하고, “축출되어야 할 사람은 인종주의자 발스 장관”이라고. 골판지에 각자 갈겨 쓴 거친 목소리들은 대통령과 정당 대표들이 보여준 교묘한 수사의 역겨운 꼼수 곁에서 더 선명하게 그 투박한 진실을 드러냈다. 추방당한 로마(집시) 소녀 레오나르다를 둘러싸고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몰아치고 지나간 지난 한 주 동안, 이 모순의 땅에 서서 생각했다. 어른들의 추한 뒤통수를 보면서,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젊음의 활시위를 당기는 이 맹랑한 아이들이 빚어낼 10년 뒤의 프랑스에 대해.

 

프랑스에서 지난 9일 코소보로 추방당한 레오나르다 (경향DB)

학교에서 견학수업 중이던 여중생이 경찰에 체포되고, 곧바로 가족과 함께 코소보로 강제송환된다. 그 소식이 알려지자 어른들이 경악하고, 정치인들은 저마다 해야 할 말을 찾으며 머리를 굴리는 동안 아이들은 거리로 나가 이 잔인한 위선을 고발한다. 사회당 내에서 당혹의 술렁임이 일고, 사르코지 집권 시절 이후 똑같이 반복되는 야만스러운 프랑스를 부끄러워하는 일차적 반응이 세상을 덮는다. 총리는 이들을 강제출국시키는 과정에 실수가 있었다면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는 말로 소극적인 수습을 기도하지만, 극우정당 르펜의 땅으로 향하던 프랑스는 금세 충격을 흡수해낸다. 우파 주자들이 나서 관용과 인본주의 따위를 가뿐히 바닥에 내던지는 발언을 앞다투어 쏟아내고, 곧이어 프랑스인의 65%가 소녀와 가족의 프랑스 귀환을 원치 않는다는 설문조사가 나오자 상황은 역전된다.

당혹스러운 여론과 사회당이란 간판이 주는 한 줄기 양심 사이에서 방황하던 올랑드 대통령은 최악의 한 수를 두고 만다. “레오나르다의 귀환을 허락한다. 그러나 그 가족들은 안된다.” 올랑드의 이 괴상한 판결이 내려지자, 좌우 양쪽에서 긴 야유가 쏟아졌다.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올랑드의 엉거주춤 리더십은 여기서 정점을 찍는다. 15세 소녀가 자신을 내쫓은 사람들의 땅으로 가족 없이 돌아올 수 있을까? 당연히 그들은 돌아올 수 없다는 답을 들려주었다. 레오나르다는 이번주 프랑스 언론들의 표지를 장식한다. 소위 ‘레오나르다 사건’이 들춰보인 프랑스의 진일보한(!) 얼굴은 많은 술회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우파정당 UMP는 표밭을 향한 탐욕으로 더욱 단호하게 극우의 땅으로 나갈 것을 선언하고, 발스 장관이 주도하는 인종주의로의 행군과 사회주의라는 간판의 무게 사이에서 방황해온 사회당은 더 극렬한 분열의 늪에 빠졌다. 극우정당 FN의 당수 르펜만이 다시 한번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카메라를 노려보며 존재를 드러내고, 자신을 축출한 프랑스와 이해할 수 없는 제안을 한 올랑드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는 열다섯 살의 레오나르다는 그 유창한 불어뿐 아니라 수줍음 없는 당돌함에서 영락없는 프렌치 키즈였다. 어깨를 걸고 거리로 나와 그녀의 귀환을 지지하던 바로 그 싱그러운 프랑스 청소년들과 똑같은. 지난 주말 시작된 투생(Toussaint) 방학은 아이들의 분노를 삼켰고, 어제도, 난민신청을 거부당한 298명의 알바니아인들은 하루아침에 강제출국을 명령받았다. 그 속엔 감히 프랑스 언론을 향해 위선을 말해줄 기회를 갖지 못한 98명의 또 다른 레오나르다가 이 모순의 역사를 노려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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