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뿌리 내리는 미국의 공정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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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경향신문 지나간 기획

(2)-1 뿌리 내리는 미국의 공정무역

by 경향글로벌칼럼 2008. 7. 28.

ㆍ학교·교회·지역사회를 ‘통로’로 급속 확산

보스턴·웨스트브리지워터 | 글· 사진 김유진기자


“왼쪽에 있는 농부의 슬픈 얼굴이 보이나요? 이런 가난의 모습이 공정무역을 만나 오른쪽 사진처럼 행복하게 됐어요. 공정무역은 변화를 가져오는 대안적 시스템입니다.”



강사의 말에 비좁은 교회 도서실을 가득 메운 30여명이 귀를 쫑긋 세운다. 강좌의 주제는 ‘공정무역 입문’. 공정무역 바나나 업체 ‘오케 바나나’의 마케팅 담당자 젠 그레이가 에콰도르의 예를 들어 공정무역의 기본 원리를 설명한다. 소비자들이 제3세계 농부들에게 국제 시장 가격보다 비싼 값으로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농부들의 수입 증가는 물론 학교·병원 건설과 같은 지역사회 내 재투자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람들의 힘을 키워주는,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투자”가 된다는 설명이다.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재투자”



 
미국 최초의 공정무역 협동조합 ‘이퀄 익스체인지(Equal Exchange)’가 판매하는 초콜릿, 차, 커피와 공정무역 커리큘럼, 학교 모금활동 소개 책자 등이 진열된 부스에 시민들이 모여있다.




지난 5월10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세계 공정무역의 날(World Fair Trade Day)’ 기념 행사의 풍경이다. 행사장인 하버드대 로스쿨 인근의 작은 교회는 ‘윤리적 소비자’들의 적극적 참여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단단하게 뿌리내린 공정무역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커피·초콜릿·장신구·수공예품·장미꽃 등 각종 공정무역 제품들을 파는 바자와 공정무역 관련 강좌 등이 어우러진 이날 행사에는 100명이 넘는 공정무역 활동가 및 시민들이 모여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인도 캘커타의 빈민 여성들이 만든 공예품이 전시된 부스를 유심히 보던 회사원 크린스 리우는 수제 카드 몇 장을 골랐다. 리우는 “CVS 같은 편의점에서 장당 5달러에 파는 멜로디카드와 가격이 같다. 같은 액수라면 공정무역 제품을 사는 것이 훨씬 더 기분 좋다”며 웃었다.



미국 사회에서 공정무역은 소비자 개개인은 물론 학교나 교회 등 공동체와 지역사회를 터전 삼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 공정무역 시장의 약 3분의 1을 점유하는 최대 시장. 공정무역 제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업체도 500여곳에 이른다. 특히 원유 다음으로 전 세계 교역량이 많은 커피 부문의 성장이 눈부시다. 공정무역 커피는 현재 미국 커피 시장(스페셜티 커피 포함)의 4%가량을 차지한다.



매사추세츠주 웨스트브리지워터의 ‘이퀄 익스체인지(Equal Exchange)’. 1986년 설립된 미국 첫 공정무역 협동조합인 이퀄 익스체인지의 22년간 발자취는 미국 내 윤리적 소비자층의 발전사와 궤를 같이 한다. 커피를 시작으로 차, 코코아, 초콜릿, 견과류 등으로 품목을 넓혀 온 이곳은 연평균 30%씩 성장해왔다. 올해 초에는 경제·경영 전문지 ‘패스트 컴퍼니’ 선정 영리회사 부문의 우수 사회적 기업으로도 선정됐다.



적극적인 주부들이 운동 리더

 


보스턴의 한 교회에서 열린 ‘세계 공정무역의 날’ 기념 바자에서 시민들이 인도 빈민여성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보고 있다.




롭 에버츠 공동대표는 “우리가 추구하는 메시지, 즉 공정무역이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고 있는 것 같다”며 “환경 문제나 노동 착취, 중국산 제품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신경쓰는 미국인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미 전역 200여개 학교가 이퀄 익스체인지의 제품을 이용해 모금 활동을 벌였다. 미국 공립학교들은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모금 행사를 여는데, 이때 주로 판매되는 물건이 정크푸드나 일회용품이라는 데 문제의식을 느낀 학부모들이 이퀄 익스체인지의 문을 두드렸다. 공정무역 상품을 팔아 수익도 남기고 빈국의 농부들도 도우면 ‘1석2조’라 여긴 것이다. 모금 프로그램 디렉터인 버지니아 버먼은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주부들이 학교 내 공정무역 운동의 리더”라며 “자녀의 식생활과 건강을 신경쓰는 주부들은 윤리적으로도 민감하고 지역사회, 지구 환경에도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학교 내 공정무역 운동은 미래의 소비자가 될 학생들을 위한 교육 차원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아이들이 대안적 소비를 이해하고 또 실제로 참여함으로써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인식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사용하는 수업용 공정무역 교재도 여러 가지 나와 있다.



이퀄 익스체인지도 지난 1월 4~9학년생을 대상으로 ‘공정무역 커리큘럼’을 개발했다. 4개 단원으로 구성된 이 교재는 사회나 경제, 수학 등의 기존 과목과 연계해 학생들이 식품의 생산과 교역 전반 및 공정무역에 관한 이슈들을 두루 익힐 수 있도록 했다.



매사추세츠주 서튼의 한 고등학교 교사 마이클 위티어는 다음 학기부터 사회 과목에서 이 교재를 사용할 예정이다. 위티어는 “내가 있는 학교는 농촌 지역에 있으며 백인이 99%”라면서 “지구촌을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넓은 시야를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버먼은 “아이들이 초콜릿 노동자가 있고, 제품별로 노동과정 등이 다르다는 점을 배우면 농부와 땅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연에도 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구매자들 환경·노동에 관심


기독교 등 종교단체들도 공정무역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보스턴 ‘세계 공정무역의 날’ 행사를 주최한 ‘보스턴 믿음정의네트워크(BFJN)’는 이 지역 40개 복음주의·진보 성향 교회와 사회단체들의 연합체다.



이퀄 익스체인지가 가톨릭, 감리교, 장로교 등 미 전역의 10개 교단과 함께 운영하는 종교간 프로그램도 공정무역이 퍼져나가는 통로다.



교인들은 매주 일요일 미사 또는 예배 후 교제의 시간에 마시는 커피를 공정무역 제품으로 바꾸고 공정무역을 위한 모금 행사를 벌이고 있다. 종교간 프로그램 디렉터인 애나 유텍은 “물질주의가 만연한 미국에서 노동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 “공정무역은 노동 과정과 누가 만들었는지, 그 과정과 대우를 질문하면서 소비자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의미있는 실천’ 가장 쉬운 기회



공정무역으로 뭉친 착한 소비자 군단은 단순히 소비 행위를 넘어 사회 변화까지 넘보고 있다. 특히 대학생 등 젊은층은 공정무역을 지구촌 빈곤문제 해결의 한 방법으로도 본다. 인도 빈민 여성들이 만든 제품을 파는 ‘골든트리아츠’의 공동 운영자인 필립 허우는 “의미있는 행동을 하기 원하는 학생들에게 공정무역은 쉽고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BFJN의 레이첼 앤더슨 대표는 “보스턴 일대가 ‘공정무역 마을’로 선정되도록 하는 게 목표”라며 “이를 위해 교회, 대학, 지역사회, 정부와도 협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공정무역?

가난한 제3세계 생산자들이 만든 물건을 정당한 값에 구매해 자립을 돕는 대안적 무역 형태이자 윤리적 소비자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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