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이후 일본은 어디로 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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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이후 일본은 어디로 가고 있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11. 18.
3월11일, 동일본을 덮친 대지진과 거대한 쓰나미, 그리고 원전사고는 일본의 형상을 바꾸려 하고 있다. 즉 자연의 형상, 국가의 형상, 사회의 형상, 또한 사람들이 갖는 가치의 형상도 바뀌려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복구’라는 방식으로 과거를 재현하려 해도 일본은 더이상 ‘어제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형상이 바뀐다해도 그것이 어떤 형상이 될 것인지, 그 누구도 이 모호한 윤곽을 파악하고 있지는 않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일본은 혼돈의 한가운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여러 가능성이 있는 동시에 일말의 가능성조차 차단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누가 일본을 이런 심각한 혼돈에 빠뜨렸던 것인가. 미증유의 지진, 쓰나미로 인한 피해인가? 그 뿐이라면 거대한 부흥수요가 일어나 ‘한국(전쟁)특수’에 의해 전후(戰後)의 혼돈에서 벗어났듯이 재건은 비교적 용이하게 진행될 것 아닌가. 굳이 ‘3·11’이라는 호칭을 쓸 필요도 없을 터이다.
일본을 혼돈에 빠뜨린 것은 원전사고가 초래한 눈에 보이지 않는 심각한 영향이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상회하는 방사능의 확산은, 과거 미나마타병을 넘는 규모로, 먹이사슬을 통한 방사능 오염을 열도 전체에 확산시키고 있다.
오염정도와 심각성, 확산에 지역적 편차가 있다고는 하지만 생활 일체를 잃을 수 있는 파국이 다가올지 모른다는 바닥없는 공포와 불안의 그림자가 국민들에게 조용히 드리우고 있다. 더구나 후쿠시마 제1원전의 주변지역과 주민에게는 죽음의 위협에 떠는 암흑의 ‘자연상태(인간본성 그대로의 생존상태)’로 추락하는 듯한 느낌이 엄습하고 있는 것 아닐까.
 



확실히 예전에도 마찬가지의 경험이 있었다. 패전이다. 국가와 그 중추가 붕괴하고, 수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 국토가 초토화하고, 모든 것이 혼돈상태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자연상태’는 어떤 의미에서 한없이 밝았고, 일본 국민은 사상처음으로 ’자유’라는 신선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전후 ‘무뢰파(無賴派)’ 작가인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가 ‘타락하라, 좀더 타락하라’(<타락론>)고 외친 것도 무한히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솟아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안 가 일본은 미국의 점령정책의 큰 전환과 체제변화, ‘한국특수’, 거대한 노동력의 배출 등에 힙입어 경제대국으로 소생했다.
하지만 ‘3·11’ 이후에 이런 낙관적인 전망은 없다. 아무리 국민동원 ‘캠페인’으로 ’간바레 닛폰(힘내라 일본)’과 ‘일본은 하나’라는 슬로건이 미디어를 통해 흘러나와도 ‘억조일심(億兆一心)’으로 일본을 똘똘 뭉치도록 하는 내셔널리즘이 확산되지는 않는다. 국가와 국민간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불신. ‘3·11’이 일본국민에게 가져다준 영향에서 가장 큰 것은 국가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감이 아닐까. 토머스 홉스가 말한 의미의 ‘자연상태’에 종지부를 찍고 질서와 안녕을 가져다주는 안식처가 아니라 오히려 ‘자연상태’를 만들어내는 원흉이 되고 있는 것 아닐까. 이런 불신감이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감은 패전 당시에도 분출했다. 그러나 점령군과 그 지배하에서 부활한 ‘전후국체(戰後國體)’하에서 전후부흥과 경제성장에 대한 구심력으로 빠르게 대체되면서 국가와 국민의 일체화가 얼마 안 가 회복됐다. 
그러나 ‘3·11’의 원전사고에서는 국가중추가 너덜너덜하게 이완되는 미증유의 사태가 초래됐다. 원전사고 이후 8개월, 정부와 도쿄전력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국민은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사고처리에서도 동일본의 주민은 불안과 염려를 끌어안은 채로 있다. 지금까지 어떤 국가와 국민도 경험하지 못한, 대량의 방사능에 의한 장기오염이라는 문명사적인 위기상황에서 일본은 그 국가적 무능력을 죄다 드러내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자연상태’로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국토의 일부를 불모지로 만들어 다음 세대의 생명을 위기에 노출시킬지 모를 미증유의 ‘예외상태’를 맞아 일본이란 국가는 필사적으로 현상유지에 급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때마침, 개혁파 관료 고가 시게아키(古賀茂明)가 발표한 <일본중추의 붕괴>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후의 산업·수출·통상정책을 책임지는 경제산업성의 엘리트인 고가가 국가적인 파탄의 내막을 내부에서 폭로한 것이다. 경제산업성이 경제대국·일본을 리드해온 국가관료제의 중추에 있고, 원자력에너지를 추진해온 관청이라는 점은 사태의 심각성을 웅변하고 있다. ‘국책민영’이라는 말로 대표되듯 국가와 기업과 대학·연구기관, 지역을 포섭하는 거대한 원자력에너지 이익 시스템은 국가중추의 핵심 그 자체였다. 
<일본중추의 붕괴>는 그것을 책임진 일본판 ‘노멘클라투라’(소수특권층)의 장치, 이에 달라붙은 정치가 등 국가중추의 이익배분 시스템과 그 붕괴를 고발하고 있다. 이렇듯 일본 국민의 눈앞에는 전후 경제적 기적의 주역인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55년 체제’이지만 그 체내에 제도적 피로를 끌어있고 있다. 

확실히, 민주당 주도의 정권교체는 체제 개혁의 호기로 기대됐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는, ‘일본의 고르바초프’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하토야마 정권은 정치소극(笑劇)을 연출한 뒤 일찌감치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리고, 전전(戰前) ‘의회제 데모크라시’ 좌초의 최초의 희생자인 하마구치 오사시(浜口雄幸)가 개탄한 것 같은 상황과 흡사해지고 있다. 
일본의 정치가 ‘멜트다운’되듯 녹아버려 어디에 중심이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가 되고 있다. 이는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이 들어선 이후에도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이미 정권지지율이 40%대로 급속히 하락하고 있는 것을 봐도 분명하다.

여기서 떠오르는 것은 제국 수도 도쿄를 덮친 대지진의 여파로 6000명의 조선인과 무정부주의자 등이 학살당하는 등 근대 일본사상 대참사로 기록된 간토(關東) 대지진과 그 후의 역사이다.
간토대지진 이후 일본에는 입헌정우회와 입헌민정당이라는 양대정당에 의한 정당정치가 정착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부패와 항쟁으로 날을 지새는 정당정치는 쇼와(昭和) 공황에서 세계공황으로 이어지는 경제적 파탄과 함께 극우테러및 군부반란을 유발해 만주사변을 기점으로 사실상 군부지배라는 거친물결에 휩쓸려 사라지고 만다. 

역사가 똑같이 되풀이되지는 않지만 정우회를 자민당, 민정당을 민주당으로 바꿔 생각하면, ‘3·11’이후 명백해진 정당정치의 기능부전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만주사변 전후의 일본과 흡사하다. 게다가 대지진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방사능 오염, 유럽을 뒤덮은 금융파탄의 사슬과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국채·달러 폭락 등 과거의 재난 및 이후 역사와 판박은 듯한 ‘광란노도’의 물결이 밀어닥치고 있다. 
물론 지금 일본에는 (과거) 군부와 같은 독단적인 무장집단은 존재하지 않고, 자위대도 문민통제하에 있다. 일본을 둘러싼 국제환경도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있다. 일본이 다시 무력으로 해외팽창하는 상황은 주체적·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11’ 이전으로 일본의 국력을 되돌리고, ‘전후데모크라시’를 일신해 ‘포스트 전후체제’의 형태를 만들려는 역학이 작동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만주사변 전후 ‘국가개조’의 슬로건 하에 혁신관료와 혁신파막료에 의한 국가통제형 신체제가 모색됐던 것처럼 ‘전후’라는 낱말 자체를 지워버리고, 헌법을 바꾸고 권력의 중심을 국민에서 국가로 옮기려는 역학이 커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년에 걸친 경제침체 및 중핵도시의 지반침하와 함께, 높은 자살률, 저출산·고령화와 고용불안, 막다른 길에 몰린 사회보장과 연금제도 등 수많은 사회불안을 끌어안은 일본에서는 특히 도시권에서 사회의 원자화(아토마이제이션)가 진행되면서 유권자의 정치적 폐색감이 점차 깊어지고 있다. 그 불만을 해소해줄 것으로 기대됐던 정권교체도 혼란을 깊게 할 뿐으로, 대변되지 않은 유권자의 분개는 포퓰리스트적인 ‘갈채 정치’에서 활로를 찾으려 하고 있다. 
가령 오사카(大阪), 나고야(名古屋), 도쿄라는 일본의 중핵도시권이 이같은 ‘보수혁명’의 주요 공명판이 될 경우 그외 지역과의 알력은 점차 커지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는 일본열도가 ‘패자’지대와 ‘승자’지대로 갈라지고, 인구유출과 산업공동화, 재정파탄에 몰린 지역에 대한 포기가 진행되는 한편으로 오사카·나고야·도쿄 등을 중심으로 하는 부유 도시지대가 국가의 자원배분에 패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태를 가리킨다.
물론 도시권에서는 다양한 저항과 반대의 움직임이 격화되고 계층간 격차가 얽히면서 보수혁명적인 ‘국가개조’로 똑바로 돌진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오사카·나고야의 포퓰리즘적인 ‘갈채의 정치’가 국정으로 파급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국가개조’ 움직임의 모멘텀이 된 것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참가다. TPP가 만약 실현되면 농업과 지역산업, 중소영세기업에 의존해온 지방도시와 지역의 급속한 쇠퇴가 진행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와 달리 경쟁력이 있는 지역과 산업분야는, 글로벌화의 혜택을 더 향유하게 될 것이다. 

이는 ‘분열하는 일본’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열을 봉합하기 위해서도 내셔널리즘이라는 접착제가 역할을 하게 될지 모른다. 그 내셔널리즘의 대외출구가 되는 것이 중국이다.
구 대장성 관료이자 <1940년 체제>의 분석으로도 알려져 있는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가 지적한 대로 환태평양협정은 중국봉쇄를 노린 새로운 경제블록화의 움직임이다. 일본에서는 지금 한·중·일과 아세안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공동체구상은 쇠퇴하고 있고, 중국의 경제력과 패권의 확대를 저지하려는 대중방위·안보의 구상이 대두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가 확대돼 역내의 무역·투자·기술협력을 추진하고 이를 밖으로 펼쳐가는 동아시아공동체구상은 멀어져가고 있다. 

한국에게 우호적인 한·일관계는 결정적으로 중요하지만 경제·안보면에서 원활한 한·중관계도 불가결하다. 대미관계라는 중요한 양국관계를 토대로 건설적인 대중·대일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한국과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중요하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살펴본 것 같은 일본의 변화를 확실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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