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기업을 변화시키는 영국의 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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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경향신문 지나간 기획

(3)-1 기업을 변화시키는 영국의 소비자

by 경향글로벌칼럼 2008. 8. 11.

ㆍ대형마트 ‘보이콧’ 압박…공정무역·친환경 유도

런던·맨체스터 | 글·사진 정환보기자


“싼 것, 싼 것, 더 싼 것을 찾는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게 만든 겁니다.”



지난 6월 말 영국 맨체스터에 있는 유기농 식품점 ‘유니콘’의 직원 러셀 니컬슨이 한국의 쇠고기 수입 논란에 대해 던진 말이다. 그는 “값이 싸면 무조건 팔린다는 인식에 근거한 협상 아니냐”고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해석했다.



유니콘에서 파는 제품은 모두 유기농으로 재배된 것이다. 자연히 가격은 일반 상점보다 비싸다. 하지만 니컬슨은 “지역 주민들이 제품을 신뢰하고 가격 차이를 합당한 것으로 여긴다”고 했다. 





 
영국 런던의 뉴몰든 테스코 매장에 ‘탄소 발자국’ 홍보물이 세워져 있다. 탄소 발자국(작은 사진)은 제품이 만들어질 때까지 사용된 탄소의 총량을 포장에 부착해 놓은 것으로 소비자들의 윤리적 선택을 돕는다.

 



단골손님들이 폐업 상점 살려내



매장에 들어서니 벽에 붙어있는 ‘테스코에 아니라고 하세요(Say no to Tesco)’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테스코는 영국 대형 마트 업계 1위다. 니컬슨은 “영국 소비자가 지출하는 돈의 7분의 1을 테스코가 가져간다. 5년 전만 해도 8분의 1이었다. 테스코가 점점 공룡이 돼가는 동안 문 닫는 지역 상점들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유니콘도 그 와중에 문을 닫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유니콘 매장이 상당히 큰 규모이고 평일 낮 시간인데도 손님들이 계산대 앞에 줄을 서 있었기 때문이다. 니컬슨은 “6년 전 인근에 테스코, 아스다 등 대형 마트가 등장하는 바람에 가게 운영이 어려워져 폐업했다”며 “그런데 몇 달 지난 뒤 ‘안전한 식품을 구할 곳이 사라져 안되겠다’는 단골 손님들이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 300여명이 40만파운드(약 8억원) 가까운 돈을 출자했다. 지금은 기부 받은 돈을 다 갚을 만큼 경영이 나아졌다. 지역 주민들이 가게를 살린 것이다.



테스코를 비롯한 대형 마트는 영국 소비자들의 단골 보이콧 대상이다. 2005년 출범한 반 테스코 동맹 ‘테스코폴리’라는 조직까지 있을 정도다. 테스코폴리에는 ‘지구의 친구들’, 신경제 재단 등 7개 NGO가 함께 참여해 활동하고 있다. 테스코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감시하다 비윤리적 이슈가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보이콧 활동에 나선다. 2005년에는 바나나 문제가 이슈였다. 납품 단가를 적정가보다 30% 이상 낮춘 테스코의 정책이 중남미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의 희생을 불러온다는 이유에서 ‘지구의 친구들’을 중심으로 불매 운동과 항의 퍼포먼스가 확산됐다. 한바탕 홍역을 치른 테스코는 지금 공정무역 인증 라벨을 붙인 바나나만 팔고 있다.



런던 남서부에 위치한 테스코 뉴몰든 엑스트라 매장 입구에는 ‘탄소 발자국’에 대한 홍보 부스가 설치돼 있다. 기업 이미지를 환경친화적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탄소 발자국은 제품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가 쓰였는지 총량을 제품의 겉에 표시한다. 테스코는 자사 상표로 생산하는 전구, 세제, 오렌지 주스, 감자 등 4개 품목에 대해 탄소 발자국을 도입했다.



테스코, 제품에 ‘탄소발자국’ 표시



영국 테스코의 케서린 시몬스 지속가능팀장은 “영국 내 전 매장에 부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환경 관련 이슈를 선점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테스코의 이미지를 개선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테스코 매장은 쓰레기를 버리러 오는 곳이기도 하다. 대형 분리수거 기계가 설치된 매장을 늘리고 있는 중이다. 런던의 아이슬워스 오스털리 테스코 매장의 쓰레기 분리 배출기 앞에 줄을 서있던 닉 로슨은 “분리해서 버려지는 처리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한번 더 환경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2위 기업인 막스앤드스펜서(M&S)는 윤리적 소비라는 트렌드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런던 킹스톤 지역의 M&S 매장을 찾았다. 매장에는 ‘플랜 A’를 알리는 안내 광고판과 입간판이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어업을 믿습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회사가 어류 남획에 참여하지 않으며 희귀어종 보호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공정한 협력자 : 우리는 지역 사회를 돕습니다” “쓰레기 : 우리는 포장을 줄이고 재생 가능한 봉투를 개발합니다”라는 홍보물도 있었다. ‘플랜 A’는 대안(플랜 B)이 없으니 당장 시행에 나서야 할 계획을 의미한다. 환경을 생각하는 100가지 시급한 과제들을 제시하고 5년 후 완전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M&S는 의류 상표로도 유명하다. 여기에도 플랜 A를 도입했다. 런던 노스워프로드에 위치한 M&S 본사 로비에는 이를 알리는 전시물이 가득했다. 면제품은 100% 공정무역을 거친 원료만 사용하기로 했다. 의류에 사용되는 폴리에스테르는 원유가 아닌 재활용 페트병으로 만들 계획이다. 이미 직원용 유니폼에 이를 도입했다. 유니폼 1벌에는 1ℓ들이 페트병 11개가 사용된다. 




맨체스터의 유니콘 식품점에 감자·양파·당근 등 이 지역에서 생산한 유기농 야채들이 진열돼 있다.





“생산자는 소비 흐름 따르게 마련”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기업과 제품의 윤리 지수를 평가해 주는 잡지 ‘에티컬 컨슈머’의 평가 기록을 참고해 보면 사정은 달랐다. 최근의 변화된 상황을 반영하면 달라지겠지만, 2005년 이들 기업의 점수는 형편 없었다. 20점 만점에 M&S는 5점, 테스코는 2.5점에 불과했다. ‘형편 없는(poor)’ 등급에 해당한다. 평가에 참여한 루스 로셀슨 기자는 “대형 유통 기업은 태생적으로 윤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설명했다. 노동자 인권 문제와 동물 학대를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그는 “이들의 1차 목표는 저렴한 가격이기 때문에 노동 비용을 줄이려 애쓴다”고 설명했다. 실제 마트 매장에서 마주치는 직원 대부분은 유색인종들이었다. 아스다, 세인스베리 등 일부 매장에서는 점원 없이 구매자가 직접 계산하는 기계를 도입하기도 했다.



에티컬 컨슈머의 롭 해리슨 편집장은 “이 같은 기업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꾸는 것은 소비자들이다. 점진적이지만 변화를 이끌어 낸 것도 소비자였다”며 소비자의 힘을 강조했다. “윤리적 소비가 소비문화의 주류로 자리잡게 되면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생산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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