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일본의 착한 식생활 '푸드 마일리지'
본문 바로가기
현장에 가다 /경향신문 지나간 기획

(4)-1 일본의 착한 식생활 '푸드 마일리지'

by 경향글로벌칼럼 2008. 8. 18.

ㆍ식재료 이동거리·온실가스 일일이 체크

오사카 | 글·사진 박지희기자




일본 오사카의 묘켄자카 초등학교에서 푸드 마일리지 쇼핑 게임이 진행된 지난 6월11일, 하야시 미호 간사(오른쪽 두번째)가 교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근처 효고현에서 생산된 귤은 별 한 개이지만, 미국에서 온 오렌지는 별이 열 다섯 개, 그레이프후르트는 서른 개랍니다.” “말도 안돼.” “엣, 거짓말.”



지난 6월11일, 오사카부(大阪府) 가타노시(交野市)에 위치한 묘켄자카(妙見坂) 초등학교에서 진행된 ‘푸드 마일리지 쇼핑 게임’ 도중 벌어진 풍경이다. 이 게임에서 나온 ‘별’은 단맛이나 품질을 나타내는 단위가 아니다. 과일이 생산지에서 식탁에 오르기까지 배출된 모든 이산화탄소의 양, 즉 푸드 마일리지를 나타낸다.



식재료의 운송 거리와 이 과정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고려하는 푸드 마일리지는 친환경 식생활을 부르는 ‘착한 소비’다. 푸드 마일리지를 의식하고 먹거리를 택할 때 운송 거리를 줄인 그 지역의 제철음식을 먹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국산 아스파라거스를 먹을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1g에 불과하지만 수입산은 341g으로 늘어난다. 푸드 마일리지를 의식하고 먹을거리를 택한다면 운송 거리를 줄인, 그 지역의 제철 음식을 먹게 된다. 결국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은 물론 지역 농업에도 이바지할 수 있게 된다. 친환경 식생활을 부르는 ‘착한 소비’인 셈이다.



일본에는 2000년대 들어 도입됐지만 이제야 겨우 알려지기 시작한 단계다.



푸드 마일리지 쇼핑 게임을 진행한 아오조라(靑空) 재단의 하야시 미호(林美帆) 간사는 “처음 들을 땐 비행기나 쇼핑처럼 푸드 마일리지도 많이 쌓여야 좋은 것인 줄 착각하는 분이 많다”며 웃었다. 푸드 마일리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이다보니 머리로는 이해해도 실천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일본에서는 거품경기 붕괴 후 ‘99엔숍’ ‘100엔숍’이 붐을 이룰 정도로 쇼핑에서 금액이 중시되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아오조라 재단은 게임과 별을 통해 푸드 마일리지의 이해를 돕는다. 1970년대와 요즘, 봄과 겨울의 계절에 따라 4개의 팀을 나누고 주로 소비되는 식재료 카드로 식단을 만든 뒤 카드 이면에 표시된 별로 이산화탄소량을 비교해보는 것. 별 한개는 이산화탄소 20g만큼을 나타낸다.



이날은 환경 관련 세미나에서 재단의 쇼핑 게임을 접한 나가노 쇼지(永野勝次) 교장의 추천으로 교사 20여명이 참여했다. 가장 이산화탄소가 적은 팀은 생선과 야채 위주로 식단을 짜 9개의 별을 얻은 ‘70년 봄팀’이었다. 대부분의 식재료가 오사카 인근에서 재배된 데다 쇼핑도 도보로 이동, 이산화탄소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반면 ‘현재 겨울팀’은 별 36개로 앞 팀에 비해 4배나 더 많았다. 식재료 대부분이 외국산이고 자동차로 슈퍼마켓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참가한 교사들도 막상 비교해 본 결과를 보고 예상보다 큰 차이에 깜짝 놀랐다. 5학년을 담당하는 교사 도야마 리츠코(富山律子)는 “매스컴에서 보고 푸드 마일리지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지만 사실 개념이 막연했다”며 “교사로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 주부로서 쇼핑할 때도 주의하겠다”고 말했다. 하야시 간사는 “푸드 마일리지를 눈으로 비교하면 바로 충격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참가자들이 또 한번 놀라는 것은 무조건 근처에서 또 국내에서 재배된 식재료라 해서 푸드 마일리지가 적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 내 홋카이도에서 키운 양파와 뉴질랜드에서 자란 호박을 비교하면 당연히 홋카이도 쪽에서 나온 것이 더 적을 듯하지만 실상은 반대다. 홋카이도에서는 트럭으로 소량 수송하게 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비행기로 대량 수송하기 때문에 개당 푸드 마일리지는 오히려 뉴질랜드 쪽이 더 적게 된다. 또 국내산만을 고집할 경우 사계절의 특성상 제철 음식이 아닌 작물을 온실에서 키워야 해 탄소 배출량이 더욱 늘어나는 경우도 생긴다. 교사 이가 오사무(伊賀治)는 “푸드 마일리지를 적용해 안을 들여다보니 우동이나 채소 절임처럼 당연히 일본식 밥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모두 외국산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보고 놀라웠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일본 내에서는 푸드 마일리지와 친환경 식생활과 관련한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해 일본의 식량 자급률이 39%로 떨어진 데다 중국산 ‘농약 만두’로 식품 안전 문제가 대두되면서 식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반성이 불어닥친 까닭이다. 실제 일본의 연간 푸드 마일리지는 약 9000억㎞로 우리나라(3000억㎞)의 3배, 프랑스(1000억㎞)의 9배에 이른다.



아오조라 재단은 푸드 마일리지의 본격적 실천을 위해 도쿠시마부(德島府) 도쿠시마시(德島市)의 생활협동조합과 협력을 준비 중이다. 생협이 운영하는 매장의 식품에 푸드 마일리지 표지를 붙이는 것. 푸드 마일리지의 홍보와 함께 이산화탄소와 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자는 취지다. 도쿄에서는 ‘대지를 지키는 모임(大地を守る會)’에서 푸드 마일리지 게임의 ‘별’과 비슷한 개념의 ‘포코’를 제안, 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다. 포코는 식품은 물론 택배 대상 상품에도 표시돼 이산화탄소 감축을 유도하고 있다.



한국의 ‘신토불이’ 운동처럼 자국 내에서 생산된 식품을 소비하자는 ‘지산지쇼(地産地消)’ 운동도 전국으로 확산 중이다. 하야시 간사는 “무조건 외국산 식품을 반대한다거나 도보 쇼핑을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푸드 마일리지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의식할 때, 물건을 사는 일이 단지 개인적인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 있는 행위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드 마일리지(Food Mileage)?

영국 환경운동가 팀 랭이 창안한 것으로 식재료가 생산·운송·소비되는 과정에서 운반된 거리를 뜻한다. 푸드 마일리지는 인간 활동의 모든 것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흔적을 뜻하는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과 결합, 이동 과정에서 배출된 온실가스의 양까지 포함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