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참소비 풀뿌리 ‘생협’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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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경향신문 지나간 기획

(6)-1 참소비 풀뿌리 ‘생협’ 확산

by 경향글로벌칼럼 2008. 9. 8.

ㆍ걸음마 뗀 한국의 ‘윤리 소비’

글 김유진·사진 정지윤기자



지난 7월30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icoop 안산시민들의생활협동조합’ 7월 마을 모임(아래사진)이 열리는 정창숙씨(35) 아파트에 주부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들어섰다. “자, ‘물품 민원’ 시간부터 진행할게요.” 생협 조합원인 주부 10명과 둥글게 둘러앉은 icoop 안산생협의 김은희 사무국장이 운을 뗐다. 생협에서 구입하는 물건의 품질이나 배달 문제 등에 대해 조합원들이 불만과 건의 사항을 나누는 자리다.





조금 비싸고 번거로워도 기꺼이 ‘친환경 먹거리’ 유통



한 주부가 더운 여름철이라 생협의 유기농 제품이 신경 쓰인다고 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오프라인 매장이 너무 붐벼서 불편한데 직원 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선희씨(41)는 “요즘 계란과 돼지고기 사기가 너무 어렵다”고 했다. 특히 돼지고기는 인터넷에서 모두 동났을 정도다.



김 사무국장이 곡물가 폭등으로 돼지 사육을 포기하는 농가가 늘어난 데다 봄부터 조합원이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물량이 많이 부족해졌다고 설명했다.



주부들은 이날 가정에서 수도요금을 절약하는 방법도 논의했다. 물 사용량이 많아지는 여름, 환경과 에너지를 생각하는 알뜰하고 윤리적인 소비자가 되자는 취지다.


정씨는 “우리는 잘 못 느끼지만 세계적으로 물 부족이 심각하고, 식수조차 없어 힘든 나라들이 많다”고 말했다.
 


물·전기 아끼는 방법도 토론



샤워기나 세탁기 등을 절수·절전형으로 교체하고, 세수나 양치, 설거지할 때 컵이나 대야에 물을 담아 쓰자는 등의 제안이 쏟아졌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를 통해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먹거리의 유통을 지향하는 생협. 생협은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공동체이자, 윤리적 소비의 풀뿌리 현장으로 볼 수 있다. 조금 비싸고 번거롭더라도 환경과 건강을 해치지 않는 믿을 만한 제품을 사겠다는 생협 조합원들은 한국의 대표적인 윤리적 소비자 군단이다.



자녀가 아토피를 앓고 있어 생협에 가입했다는 강난예씨(45)는 “생협의 물품에는 색소나 항생제, 첨가물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고 맛도 좋다”며 “일반 가격보다 100~200원 비싸지만 부담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 5월부터 생협에서 대부분의 장을 보고 있는 최수아씨(34)는 “가족 건강을 책임지는 주부로서 (생협에서 활동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올들어 회원 수 2배 늘어



지난해 9월 처음 시작된 icoop 안산생협 마을모임은 안산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활발히 활동하는 모임에 속한다.



경북 포항에서 안산으로 이사한 뒤 마을모임을 시작한 정창숙씨는 “사실은 네살 된 아이가 친구 집에 놀러가서 어떤 음식을 먹을까 염려하는 마음에 주위 사람들에게 생협 가입을 적극 권유하게 됐다”고 밝혔다.



2002년부터 생협 조합원이 된 정씨는 중고 장난감 구입,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분리수거와 재활용 등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당장 변화는 없을지라도 환경 파괴를 조금씩 막을 수 있다면 내 아이 세대가 어른이 될 때에는 완전히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생협의 역사는 1980년대 무렵까지 거슬러올라가지만, 최근 환경과 식품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생협의 인기는 부쩍 높아졌다. icoop 생협연합회(전 한국생협연대)도 올들어 지난 6월까지 회원 수가 지난해보다 200%나 늘어나는 등 폭발적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유전자변형식품(GMO)의 안전성과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이 불거진 5월 한 달에만 2133명이 신규 가입했다.



icoop 생협의 전수영 조합지원팀장은 “과거 생협이 출자금을 내는 조합원들 중심이었다면, 대기업의 증가와 수입농산물로 인한 타격이 커지면서 좀더 큰 사회운동으로 발전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나 쌀 시장 개방,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생협 5년차 주부’인 김선희씨는 얼마 전 생협에서 친환경 농가를 방문했을 때 “친환경 농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목격했다”면서 “소비자로서 내가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게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



생협 외에 공정무역, 기업 보이콧, 책임여행 등 다른 윤리적 소비 형태도 한국 사회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공정무역·기업 보이콧 관심



공정무역의 경우 2003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정무역을 시작한 ‘아름다운 가게’가 네팔 공정무역 커피 ‘히말라야의 선물’ 등을 판매하고 있고, YMCA는 동티모르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커피숍 ‘카페 티모르’를 운영 중이다.
 


두레생협은 2004년 필리핀 네그로스 섬에서 생산된 공정무역 설탕을 출시했고, icoop 생협은 콜롬비아 생산자로부터 사들인 커피와 초콜릿 등을 팔고 있다.



페어트레이드코리아는 의류, 장신구, 도자기, 차 등 120여종의 공정무역 제품을 지난해부터 온라인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데 이어 지난 6월에는 서울 안국동에 공정무역 전문 오프라인 매장 ‘그루’를 열었다.



일부 다국적 기업들은 미국 본사에서 공정무역 제품을 팔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참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일부 국내 대기업이 공정무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6월부터 압구정 본점과 무역센터점에서 공정무역연합이 유통하는 공정무역 인증 초콜릿, 잼, 설탕, 코코아 등을 팔고 있다. 보이콧 운동 역시 윤리적 소비 운동의 한 형태로 정착해가는 모습이다. 지난해 7월 이랜드 비정규직 사태가 불거졌을 때 이랜드 계열사인 홈에버, 뉴코아 등에 대한 불매 운동이 벌어졌다.



이랜드가 여성 계산원 등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하고 노조를 탄압한 데 반발하면서, 농성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지원하자는 의미였다. ‘나쁜 기업 이랜드 불매 시민행동’이 조직돼 인터넷을 중심으로 활발한 캠페인이 펼쳐졌다.



몇 해 전부터 서구에서 윤리적 소비의 하나로 떠오른 ‘책임여행’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기름 유출 사고로 큰 피해를 본 충남 태안지역에서 단체 봉사활동을 벌이거나,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개인, 가족, 기업 단위로 일부러 태안을 찾는 것 등은 책임여행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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