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공동체 삶을 위한 소비… 내가 변화의 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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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경향신문 지나간 기획

(7) “공동체 삶을 위한 소비… 내가 변화의 주체”

by 경향글로벌칼럼 2008. 9. 21.

ㆍ윤리적 소비를 위한 제언 전문가 좌담

글 김유진·정환보 · 사진 김문석기자



상품의 제조·유통 과정은 물론 기업정신과 같은 이면의 가치까지 고려해 구매하는 ‘윤리적 소비’는 이제 한국에서도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생활협동조합이나 공정무역, 친환경 소비 등의 다양한 윤리적 소비 운동이 시민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출발선에 선 만큼 소비자의 저변을 넓히고 시장을 확대하는 등의 과제도 안고 있다. 경향신문은 기획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한국의 윤리적 소비 현황을 진단하고 향후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전문가 좌담을 열었다. 지난달 25일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좌담은 최근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덕승|녹색소비자연대 상임대표


이덕승 녹색소비자연대 상임대표(이하 이덕승)=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데, 환경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개개인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윤리적 소비는 이타적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지금은 과거처럼 조직적 사회운동을 통한 변화의 시대가 아니라 개인의 주관적 가치를 통해 실현하는 시대다.



김찬호|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이하 김찬호)=이번 정부 들어 경제 살리기가 화두이고, 8·15에는 녹색 성장도 얘기했다. 둘 다 의미가 있지만 어떻게 살리느냐가 관건인데, 생산뿐 아니라 소비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도 중요하다. 돈이 있으니 무의식적으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내가 변화의 주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박창순|한국공정무역연합 대표




박창순 한국공정무역연합 대표(이하 박창순)=산업화 이후 대량 생산·대량 소비 체제가 굳어지면서 필연적으로 지구 생태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지구 공멸에 대한 위기의식이 윤리적 소비의 근본이라고 본다. 윤리적 소비를 한 마디로 말하면 책임있는 소비다. 상품 구매 결정권을 가진 소비자가 단순히 상품만이 아닌, 제조의 성격과 제조 과정까지 생각하는 것이다. 공동체적 삶을 위한 깨어있는 소비다.



 


이보은|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




이보은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이하 이보은)=소비자 권리가 신장됐다고는 하지만 사실 브랜드나 기업 상술에 포획된 측면이 있다. 윤리적 소비는 소비자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운동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따질 수밖에 없다. 윤리적 소비는 시민의 양심과 소비자의 권리의식이 만나는 접점 어딘가에 위치한 것으로 본다.



이덕승=보통 소비는 경제적 효용성에 입각한 행위인데 이를 비윤리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윤리적 소비는 개인의 만족 추구와 관계 없이 옳다고 생각하는 다른 가치들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소비자 운동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이보은=한국에서 윤리적 소비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불매운동에서부터 발전된 서구와 다른 점이다. 기업 책임에 대한 문제의식은 선진국 수준인데, 소비자 쪽에서는 초과 비용 지불 의사가 낮게 나오는 등 미흡하다. 과거 녹색소비자 운동이 있었고 2004년쯤부터 공정무역이 도입됐다. 하지만 외국처럼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행동이나 교육의 소산이라기 보다는 세계 시장에 자리잡은 비즈니스들이 한국에 소개되면서 시작됐다.



김찬호=공정무역 이전에 생활협동조합이 있었다. 일본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한국 생협은 처음부터 직거래와 농촌 살리기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다른 모델이다. 먹거리 중심인데 위험사회에서 불안이 커지면서 최근 늘고 있다. 생협은 어떻게 보면 가장 이타적인 요소와 이기적인 요소가 만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당장 이익이 안 되더라도 지구 전체까지 고려하는 부분은 미진하다. 또 환경과 관련된 것은 있지만 문화에서는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 술 대신 연극을 보는 것이 곧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인데 말이다.

 

박창순=다양한 생협이 윤리적 소비의 확대에 기여했다고 본다. 다만 조합원 위주여서 제한적이고, 빈곤 등 국제적 이슈에는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 공정무역은 한국에서 첫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이보은=‘우리 밀 살리기 운동’은 한국의 윤리적 소비 운동의 성과로 볼 수 있다. 시장 점유율도 나름대로 성공한 것으로 안다. 그동안 생협은 유일한 진지(陣地)였는데, 일반 시장에 진입한 것 자체가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농촌에 대한 부채의식, 신토불이 등이 갖는 한계도 있다. 국내 농업을 돕는 일과 함께 국제무역 속의 공정성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찬호=‘우리’라는 단어가 들어가듯이 내셔널 코드가 강한 측면이 있는데, 글로벌한 차원에서도 기회로 바라보거나 방어적으로만 보지 말고 우리가 한 축을 맡고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반지 하나 만드는 데 브라질 금 채굴 노동자들이 수은 중독으로 고통받는다는 점 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로컬 차원에서라면 지역화폐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박창순=윤리적 소비가 보다 활성화되려면 개인이나 시민사회, 기업, 정부 차원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다. 특히 ‘촛불’에서 개인의 힘이 크다는 것을 목격하지 않았는가. 윤리적 소비, 윤리적 생산도 일상에서 실천한다면 가능하다. 공정무역의 경우 시장 확대라는 과제와 함께 소비자 교육과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가 외국에 정부개발원조(ODA)를 하고 있는데 공정무역의 중요성을 깨달아 관련 정책도 추진하면 좋겠다.




김찬호=지난해 ‘고용 없는 성장’을 했는데, 존재 가치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노동은 밥벌이 수단으로, 유통은 사기, 소비는 욕망의 탕진으로 전락하는 등 경제행위 전반에 왜곡이 있다. 또 소비 차원에서 윤리가 화두인데, 윤리라는 말은 도덕주의적 느낌이 든다. 삶의 즐거움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꾸면 어떨까 한다. 시장이라는 것은 원래 사회문화적 가치를 담은 공간이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무형의 가치를 발굴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자리 없는 젊은이들은 더더욱 희망이 없다.

이보은=촛불 정국에서 보여준 개인의 참여가 일상 속으로 가기를 희망한다. 슈퍼마켓에 가는 일이 지구의 미래가 걸린 투표행위와 같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기업과 정부 정책에 변화를 요구하는 소비자 운동도 시급하다. 윤리적 소비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다양해서 반 소비 운동도 포함된다. 시민사회가 좀더 다양한 활동으로 윤리적 소비 의식을 키워야 한다. 또 윤리적 소비가 확산되려면 다양한 사회적 기업들이 필요하다. 특히 문화나 서비스 부문에서 새로운 모델이 나올 수 있다. 정부가 하는 사회적 기업 사업은 취약 계층에 치중돼있는데, 새로운 문화적 가치들을 포함해야 한다. 환경마크와 같은 긍정적 정책들도 더 나와야 한다.



이덕승=결국 중요한 것은 시민의식의 변화다. 윤리적 상품들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 90년대 초반 녹색상품 구매 운동이 일었는데 제품의 품질이 그다지 우수하지 않아서 약화됐다. 공정무역도 일반 대기업 등과 눈높이를 맞춰 브랜드 가치와 신뢰를 얻고, 공공정책적 지원도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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