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IB, 북한에도 문 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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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

AIIB, 북한에도 문 열려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4. 7.

북한은 지금까지 세 차례 국제금융기구 가입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7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아시아개발은행(ADB)에 가입 신청서를 보냈으나 ADB를 주도하는 미국과 일본의 벽을 넘지 못했고, 올해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 의사를 밝혔지만 중국의 거부로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지난 2월 주중 북한대사관 고위 관계자를 통해 AIIB를 주도하는 중국 정부에 가입 의사를 전달했으나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AIIB가 열려 있는, 포괄적·다자적 개발기구이지만 북한과 관련된 정황을 알지 못한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꺼려 정확한 사유는 확인되지 않는다. ‘북한이 자국의 경제금융시장 상황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북한의 금융수준 부족을 이유로 중국이 거절했다’ ‘북한이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이나 ADB의 회원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입이 어려웠다’ 등 여러 이유가 거론될 뿐이다.

하지만 이런 요인은 표면적인 것으로 보인다.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중국이 북한의 가입에 긍정적 태도를 보였다면 상당한 논란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한국과 유럽 국가들의 가입을 장담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AIIB는 중국의 글로벌 위상을 보여주는 자부심의 상징이다. 중국으로서는 북한 때문에 AIIB가 ‘흥행’에 실패하는 상황을 상정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중국 언론들이 AIIB의 친구그룹(朋友圈)이 확대되고 있다고 연일 보도했지만 한때 혈맹관계였던 북한은 결국 친구그룹에 끼지 못했다.

우리가 AIIB에 가입하기로 좀 더 일찍 결단을 내리고 북한 가입 문제를 중국 측과 논의했으면 어땠을까. 과거 우리 정부의 태도로 보면 이렇게 했어야 맞는다.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은 2013년 11월 북한의 국제기구 가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지난해 3월 독일 드레스덴 방문 연설에서 북한 경제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을 제안했다. 북한을 국제금융기구에 가입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과거 국책연구기관들도 꾸준히 제기했던 사안이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출처 : 경향DB)


AIIB가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고 경제를 살리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가입 무산은 아쉽다. 북한이 창립 회원국으로 참여하지 못한다고 해서 AIIB와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다. AIIB는 총회 승인을 거치면 비회원국에도 자금 및 투자 지원을 허용하고 있다. 앞으로 북한이 추가로 가입을 시도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가 진정으로 대북 관계 개선 의지가 있다면 AIIB를 통해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끌어 낼 방안이 없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퍼주기 논란으로 직접 북한을 돕는 게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AIIB를 북한 변화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중국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오는 것을 바라고 있으며 점차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는 조짐도 포착된다. 과거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은 미국, 일본의 제지로 무산됐지만 현재 AIIB에는 미·일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

물론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전향적 자세변화가 없는 한 AIIB의 북한에 대한 투자 논의과정에서 핵 개발이나 인권 문제가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경우 중국이 북한의 가입을 용인하거나 투자 결정에 동조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때문에 북한도 비핵화에 대해 진전된 입장을 제시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어느 도시에 인프라가 얼마나 부족한지, 개발 필요성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준비해 AIIB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에 나서야 한다. 남북한이 놓치기엔 아까운 큰 장이 펼쳐지려 하고 있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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