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주세요 개각’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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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김진우의 도쿄 리포트

‘잊어주세요 개각’의 한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8. 9.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겸허하고 정중하게 국민이 맡겨준 책임에 부응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3일 개각을 단행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눈을 감은 채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그 상태로 8초 정도 있었다. “다시 한번 반성한다” “사과드리고 싶다”.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시종일관 저자세로 일관했다. 지난 4월 특파원 부임 이래 보아온 아베 총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베 총리의 몸 낮추기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5일 요미우리TV에 나와 “마음가짐에 교만이 생겼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친구가 이사장인 가케(加計)학원의 수의학부 신설에 총리 측이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둘러싼 국회에서의 답변 태도를 ‘반성’한 것이다. ‘일생의 과업’이라던 개헌에 대해서도 “일정이 정해진 게 아니다”라면서 한발 물러섰다. 그러면서 “최우선 과제는 경제 살리기”라고 했다. 마치 “나 이렇게 변했어요”라고 홍보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3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단행한 개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도쿄 _ AFP연합뉴스

 

아베 총리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은 물론 지지율 추락으로 ‘아베 1강’ 체제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는 높은 지지율을 배경으로 이론(異論)을 틀어막는 ‘1강 체제’를 구축해왔다.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적’으로 규정하는 ‘대결형 정치’로 정권 구심력을 유지해왔다. 이런 정치 자세에는 한때 70%를 넘봤던 높은 지지율, 2012년 정권 탈환 당시의 중의원 선거를 포함해 4번의 전국 선거에서 연승을 기록해온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대결형·강압적 정치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의 ‘역사적 참패’와 지지율 급락으로 벼랑 끝에 몰리면서 개각으로 ‘민심(民心)의 일신(一新)’을 도모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아베 총리의 개각과 저자세 행보는 일정한 효과를 얻고 있다.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추락은 일단 멈췄다. 언론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아베 내각 지지율은 전달보다 2~9%포인트 정도 상승한 35~44.4% 수준이다.

 

하지만 지지율이 회복세로 들어섰다고 말하기는 일러 보인다. 지지율 상승이 개각에 따른 반짝 효과일 가능성도 있다.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지지한다’는 응답을 상회하는 등 아베 총리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3~4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총리의 자민당 총재 3연임에 반대한다는 의견도 54%로, 찬성 36%를 웃돌았다.

 

한 저널리스트는 이번 새 내각에 대해 ‘잊어주세요 내각’이라고 이름붙였다. 개각을 통해 가케학원 특혜 의혹, 모리토모(森友)학원에 대한 국유지 헐값 매각 의혹, 남수단 평화유지활동(PKO) 자위대의 문서 은폐 의혹 등 3개의 문제를 덮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집권 자민당은 가케학원 의혹의 핵심 인물인 가케 고타로(加計孝太郞) 전 이사장이나 자위대 문서 은폐 의혹과 관련한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전 방위상의 국회 출석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또한 아베 총리가 “정해진 일정이 없다”고 했지만 개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철회한 것도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각료들의 면면이 아니다. 국민에 대해 겸허하고 정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아베 총리 자신이 바뀌느냐에 있다. 아베 총리는 지금까지 안보 관련법 성립, 원전 재가동, 공모죄법 성립, 개헌 추진 등 ‘아베 노선’을 일방통행식으로 달려왔다. 비판이나 의문의 목소리에 대해선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후과가 지금 ‘아베 1강’의 붕괴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이미 그를 불신에 찬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 만약 아베 총리가 이번에 자신을 바꾸기는커녕 ‘호박에 줄 긋기’식으로 넘어가려 한다면, 그에게 권한을 위임한 일본 국민들이 그를 바꿔버릴지도 모른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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