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북한의 남측 취재 거부, 판문점선언 훼손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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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사설]북한의 남측 취재 거부, 판문점선언 훼손 행위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5. 23.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취재하기 위한 남한 기자단 방북이 무산됐다.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등 4개국 외신기자단은 23~25일 진행될 핵실험장 폐기 현장 취재를 위해 22일 베이징에서 고려항공 전세기를 타고 원산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북측이 남측 취재진 8명의 명단을 접수하지 않아 동행하지 못했다. 북한이 비핵화의 첫발을 떼는 역사적인 행사 취재에 당사국인 한국이 제외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더구나 핵실험장 폐기 행사 취재는 남북 정상 간의 약속이기도 했다. 북한의 약속 위반은 ‘남북 간 모든 합의들을 반드시 이행함으로써 과거의 대결과 반목을 끝내자’는 판문점선언의 취지를 훼손하는 행위다.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에 초대받은 외신 기자들이 22일 원산 갈마비행장에 도착해 입국 수속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지난달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핵실험장 폐기 방침을 천명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일주일 뒤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5월 중 핵실험장 폐기를 진행할 것이며 남한과 미국의 전문가와 언론인을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북한은 지난 15일 통신사와 방송사 기자를 각각 4명씩 초청하겠다는 통지문을 보냈다. 그러다 16일 돌연 남북 고위급회담을 취소하며 남측을 압박하더니 취재진 방북마저 불허한 것이다. 북한은 올 들어 남북관계에서 과거와 달리 신의·성실에 기초한 태도로 임했고, 그 때문에 남측 여론의 호평을 받았다.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합의한 판문점선언에 남측 여론은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짧은 기간이지만 남북 간에 상당한 신뢰관계가 조성됐고, 이를 의심하는 이들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약속 위반은 여론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번 약속 파기는 남북관계에서 상당기간 후유증으로 남을 수 있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진전을 반기지 않는 세력들이 기회있을 때마다 이를 끄집어내면서 남남갈등을 유발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남측 여론의 지지가 약화될 경우 남북관계가 삐걱거려 왔음은 북한 당국도 익히 경험한 사실이다. 향후 남북관계에서 이런 약속 위반이 재발돼선 안된다.  

 

한가지 짚을 것은 핵실험장 폐기행사를 ‘정치쇼’로 깎아내리거나 북한이 취재비로 1인당 1만달러(1100만원)라는 거액을 요구했다는 근거 없는 보도를 한 보수언론들의 태도다. 이날 방북한 외신기자들은 북한이 통상적인 금액의 항공·숙박비를 요구했다고 했다. ‘1인당 1만달러’는 허위보도였던 셈이다. 방북 취재가 무산된 데는 북한이 하는 일이라면 일단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보수언론들도 원인 제공을 한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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