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중심서 변화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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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손제민의 특파원 칼럼

자본주의 중심서 변화 시작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0. 13.

지난 9월26일자 월스트리트저널에 눈길을 끄는 글이 실렸다. “서구 국가들이 카를 마르크스의 끔찍한 전망이 틀렸다고 입증하고 싶다면 중산층을 어떻게 살릴지 창의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말로 시작하는 이 글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전기작가 찰스 무어가 기고한 글이다. 무어는 대처의 유족으로부터 다른 전기작가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자료들을 제공받아 책을 써서 ‘공인된’ 전기작가로 불린다.

글은 1987년 대처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나눈 대화에서 시작한다. 고르바초프가 ‘가진 자들을 대변하면서 사람들에게 누가 진짜 권력을 갖고 있는지를 숨긴다’며 대처를 비판했다. 대처는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가진 자들로 이뤄진 사회이지, 가진 자 계급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모든 사람들을 가진 자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많은 사람들이 집과 주식을 갖게 됐고, 서구의 가진 자들의 사회는 날로 성장했다. 대처는 “돈 버는 모든 사람들이 곧 소유한 사람”이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치며 자본주의를 설파했다. 동구권 사회주의가 무너지며 역사는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그로부터 28년 뒤 세상은 대처가 바라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영국과 미국에서 집과 주식 소유자의 비율은 많이 떨어졌다. 무어는 자신이 직장생활을 시작한 1979년과 비교해 최근 런던에서 일을 시작한 자녀들은 실질소득이 오히려 좀 떨어진 반면 15배나 높아진 주택 가격을 감당해야 한다고 했다. 무어는 “가지지 못한 자들의 사회라고까지 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덜 가진 자들의 사회가 됐다”며 “많은 중산층들이 그들이 만들어내려고 했던 시스템의 포로가 되어있음을 깨닫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본의 소유 유무에서 비롯되는 불균등한 권력관계에 대한 마르크스의 통찰이 결국 옳았을 수 있다며 대안 마련을 촉구하면서 글을 맺었다. 신자유주의 질서 설계자 전기작가의 이런 글이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매체에 발표된 것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2008년 금융위기와 2011년 월가 점령시위 등을 거치며 축적된 분노와 사회변화에 대한 열망의 결과일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 심화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책이 정작 프랑스보다 미국 내에서 큰 인기를 얻고, 미국 일각에서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는 곳마다 많은 환영을 받은 것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된다.

프란치스코 교황_연합뉴스


같은 선상에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표방하는 버니 샌더스가 일으키는 돌풍이 있다. 무소속이어서 민주당 내 기반이 없는 그는 풀뿌리 시민들의 소액기부에 의존하면서도 ‘무적’이라던 힐러리 클린턴을 턱밑까지 추격하며 민주당 경선 판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샌더스현상은 30여년간 경제적 정의 문제에 천착한 노정객의 우직함과 금융위기 이후 커진 대중의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만나면서 만들어졌다.

현 시점에서 볼 때 객관적으로 샌더스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는 힐러리를 좀 더 왼쪽으로 끌어당기고 퇴장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 진보진영은 대체로 샌더스 돌풍을 긍정적으로 보지만, 논쟁도 존재한다. 샌더스가 애초 중도진보 성향의 민주당에서 경선을 하기로 한 것이 장기적인 진보진영의 미래를 위해 좋은지, 그의 공약이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주의라기보다 독일 사회민주당, 영국 노동당의 사민주의 전통에 닿아있다는 점에서 얼마나 개혁적인지 등 의문이 제기된다.

하지만 한국 내 현실이 암울하다보니 이런 논쟁조차 부러움의 대상이다. ‘가지지 못한’ 계급의 문제가 미국 정치의 한복판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은 변화이고, 이는 곧 자본주의의 중심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변화이기에 예사롭지 않다.


손제민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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