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안팎의 훼방자들에 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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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정동칼럼]안팎의 훼방자들에 대비하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1. 22.

-2018년 1월 19일자 지면기사-

 

2018년 벽두부터 꽁꽁 얼어붙었던 한반도에 해빙의 조짐이 일고 있다. 25개월 만에 남북대화가 복구되었다. 아직은 설익은 희망사고라고 할 수 있지만, 만화처럼 비현실적이고 삼류영화의 막장대화처럼 북·미 간의 말폭탄이 난무했던 지난해를 생각하면 이 정도의 기대와 들뜸은 허용될 만하다. 물론 해결된 것 하나 없고, 장애물은 끝도 없이 많아 보인다. 평창 올림픽까지는 어떻게든 갈 수 있겠지만,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목표는 여전히 아득하다. 북한이 지금까지는 놀라울 정도로 협조적이지만 여차하면 무산될 수 있는 위태함이 도사리고 있다.

 

북한 외에도 안팎의 훼방자들이 걱정을 더한다. 이들은 겉으로는 나라를 걱정하고 실패를 우려하는 듯하지만, 속내는 성공을 향한 국면전환을 두려워한다.

 

먼저 해빙무드에 찬물을 끼얹는 내부의 훼방자다. 김정은의 신년사 발표시점부터 한·미관계 이간질을 위한 통남봉미 전술이라고 비판하더니, 평창을 인질로 금품을 요구할 것이며, 위장평화공세로 이미지 세탁과 비핵화압력을 비껴가려는 북한을 문재인 정부가 도와주며 호구인증에 나섰다면서 공세를 늦추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예단이기는 하나 고려할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비판의 동기가 성공을 위한 우려가 아니라 판 뒤엎기의 예열이라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멈추지 않고 이미 거짓으로 판명난 개성공단의 핵개발 자금 유용이라는 프레임의 부활, 남북관계 개선은 곧 한·미동맹의 붕괴라는 근거 없는 흑백논리가 어김없이 뒤따른다.

 

분단고착세력들은 평창 올림픽과 남북대화의 성공보다 미국의 심기가 중요하며, 한반도의 해빙보다는 전쟁위기의 한파를 오히려 편안해한다. 왜냐하면 얼음이 녹으면 이들의 기득권은 수장되기 때문이다.

 

협상국면이 달갑지 않은 외부의 훼방자는 미국의 강경파들이다. 그들의 사고체계로는 북한이 변할 수 없고, 또 변해서도 안된다. 수용할 수 있는 변화는 북한의 항복 또는 붕괴뿐이다. 따라서 현재의 대화국면을 북한의 계략이거나 한국 종북진보의 반동으로 인식한다. 평화를 상징하는 올림픽을 방해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벙어리 냉가슴 앓고 있으나, 내심 ‘탈선’을 기다리며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사드 조기 배치로 압박했었던 그들이 이번에는 샴페인에 취한 탓이라고 매도했다. 다행히 트럼프가 평창 올림픽 기간에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하는 데 동의했고 문 대통령을 100% 지지한다고 말함으로써 일단 이들의 입은 닫혔다. 물론 지난해 전쟁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던 당사자인 트럼프의 변화조차도 신뢰하기는 어렵다. 무력시위를 통한 위협전략에 피로감이 생길 즈음에 협상이라는 다른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판단 정도일 수 있다.

 

이렇듯 주어진 기회는 제한적이며 시한부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남북관계 개선이 부여하는 외교 지렛대의 위력을 경험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외교농단의 결과로 코리아 패싱을 말하던 때와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미국은 한국이 과연 북한을 끌어낼 능력이 있는가를 시험하고, 북한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상대인 미국을 한국이 견인할 수 있는지 주시한다. 중국 역시 북·중관계가 최악인 동시에 북한의 전략적 유용성은 도리어 커지는 딜레마 상황에서 한국이 과연 북·미를 설득해 문제해결의 돌파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지켜보고 있다.

 

우리의 외교력을 최대치로 발휘해 시한부 국면을 지속가능한 체제로 만들기 위해 양다리가 아닌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훼방자들에게 더 이상의 여지를 줘서는 안되며 당황할 정도의 속도와 규모로 대화국면의 비가역을 확보해야 한다. 지뢰밭을 제거하려면 하나씩 조심스럽게 제거하는 방법도 있지만, 지금은 폭발을 통해 한꺼번에 제거하는 방법이 필요한 때다. 미국을 너무 의식해서 길목마다 비핵화의 단호함을 언급함으로써 스스로 장애물을 조성할 필요는 없다. 해빙무드를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한의 핵보유에 대해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화에 갇히고,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연명을 위한 이야기만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어차피 훼방자들은 약간의 파행만 있어도 한·미동맹 위기를 들먹이고 주한미군 철수카드로 위협할 것이다. 현재 배후에서 단일팀 구성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본질을 흔드는 선동은 앞으로 비핵화를 전제조건화하면서 북한을 자극하는 동시에 미국 강경파의 동조를 얻어 문재인 정부를 코너로 몰아붙일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비핵화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비핵화의 단일 테이블만 고집하기보다 다양한 테이블을 동시 추진함으로써 완충시켜야 한다. 치밀하게 준비하되 굴하지 말고,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평화의 담대한 ‘문’을 여는 ‘문’재인 정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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