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거는 첫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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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영환의 워싱턴 리포트

트럼프에 거는 첫 ‘기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3. 14.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워싱턴의 반응이 재미있다. 정치권, 싱크탱크 전문가들, 언론들은 기대감보다는 걱정을 쏟아내고 있다. 백악관이 ‘코피작전’을 준비할 때 전쟁의 위험을 경고하며 대화를 강조했던 그들이다. 하지만 정상회담 발표 후 뉴욕타임스는 ‘정말 엉망진창’이라고 평가했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어떤 핵 양보도 없이 북한을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정상회담 제안에 놀라워하던 언론들이 다음날에는 가짜뉴스가 됐다. 그들은 ‘그래서 뭐’ ‘누가 신경 쓰는데’라고 말한다”고 비판할 정도다.

 

워싱턴의 불안감을 이해는 할 수 있다. 너무 빠르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여로 시작해서 대북특사단 파견, 남북정상회담 합의, 북·미 정상회담 추진으로 한 달여 만에 한반도 정세가 급변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들이 70년에 걸쳐 추진해온 북·미 정상회담이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특사단과의 45분 면담에서 곧바로 결정됐다. 주도권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쥐고 있다. 상황 변화의 시작도, 이후 전개 과정도 그가 던진 카드를 따라왔다. 다음에 무슨 카드를 내밀며 관련국들을 어디로 끌고 갈지 모른다.

 

북한에 당한 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역사적 합의들은 번번이 북한의 약속 위반으로 무산됐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트럼프 정부의 준비 부족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반도 외교라인은 텅 빈 상태다.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국무부를 “전멸 상태”라고 표현했다. 상황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북한이 쳐 놓은 덫에 스스로 빠지는 게 아닌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성공을 기대하기보다는 실패에 대비하라고 충고하는 전문가들은 한국에도 많다.

 

하지만 지금은 변화를 선택할 시점이다. 지난 겨울 워싱턴의 화두는 한반도 위기론이었다. 전문가 세미나마다 대북 선제타격론이 거론됐고,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을 두고 확률 계산도 이어졌다. 한 공화당 의원의 입에서는 “죽어도 거기서(한반도에서) 죽는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까지 소개됐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한반도 전쟁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쟁 위험에 직면한 한국이나 핵미사일 사거리에 들어간 미국이나 더 이상 앞뒤를 재면서 앉아서 생각만 할 상황이 아니다.

 

북한의 행보가 과거와는 다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위원장이 실제 핵을 포기하면서 안보와 경제에서 양보를 얻어내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과의 1.5 트랙(반관반민) 대화를 해온 수전 디마지오 뉴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은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기고에서 “북한 정권은 갈등을 피하고 경제를 현대화하기 위한 자체 의제를 가지고 있다”면서 “그게 바로 트럼프가 김정은의 제안을 받아들인 게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실제 남북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을 택하고, 중국을 제쳐두고 미국부터 만나겠다는 김 위원장의 행보는 기존 문법으로는 해석이 쉽지 않다. 판이 바뀌고 새로운 게임이 시작될 수도 있다.

 

북핵 문제는 풀기 어렵다. 실타래처럼 얽혀 서로를 간섭하고 있는 이해와 불신을 하나씩 차례로 풀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엉킨 실타래를 끊어버리고 새 실을 바늘에 꿰는 게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 특히 최고 지도자의 결단이 정책 방향을 좌우하는 독재 정권과의 협상에서는 이 방식이 효율적일지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택한 사상 첫 북·미 정상 간 담판이 그 모범 사례가 되기를 바란다. 지금 트럼프 정부가 할 일은 철저한 준비이고,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를 위한 충고와 제안을 해야 한다. 조태열 주유엔 한국대사의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표현에 적극 공감한다. “기회는 꼬리가 없어서 지나가면 뒤에서 잡을 수 없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에 동의와 기대를 보낸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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