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도적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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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한국의 ‘주도적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7. 19.

지난달 문재인 정부의 첫 한·미 정상회담 이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 중 하나가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다. 한국에 사활적 문제인 북핵·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한국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한국의 주도적 역할 확보’를 한·미 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로 꼽는 데 별로 이견이 없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런데 ‘주도적 역할’을 한국 외교의 금과옥조이며 최대 가치인 것처럼 여기는 인식이 만연하는 상황은 왠지 불편하다. 화려한 겉모습에 비해 실제 내용은 빈약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없지 않다. 남들이 다 잘했다고 하는 것을 한번 비틀어 보고 싶은 삐딱한 신문쟁이 근성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북핵·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데 주력한 나머지 내용 면에서는 손해를 본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6일 오후(현지시간) 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을 공식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주함부르크 미국총영사관 에서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일 3국 정상만찬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예나 지금이나 국내에서 가장 부정적인 현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통미봉남(通美封南)’이다. 북한이 한국을 상대하지 않고 미국과 직거래를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때는 합의문에 한국의 요구 사항인 ‘남북대화를 재개한다’는 문구를 포함시키는 문제를 놓고 북·미가 충돌해 다 된 협상이 거의 결렬 직전까지 갔다.

 

북핵 문제 해결 바이블로 불리는 9·19 공동성명에도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 한·미·중·일·러 등이 북한에 에너지 지원을 한다는 내용 뒤에 따라붙은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200만킬로와트 전력 공급에 관한 2005년 7월12일자 제안을 재확인하였다”는 대목이다. 당시 정부가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을 재가동시키기 위해 북한에 제시한 이른바 ‘중대제안’에 대한 언급이다. 이 제안은 북한이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어서 협상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9·19 공동성명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과시하기 위해 자칫 에너지 지원 덤터기를 쓸 수도 있는 위험한 내용을 ‘재확인했다’는 애매한 표현으로 삽입시켰다. 이 문구를 넣기 위해 쏟아부은 외교적 자산과 문안 협상에서 ‘트레이드오프’ 등을 감안하면 이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는지 알 수 있다.

 

북·미가 뭔가 접촉을 가질 기미가 보이면 한국이 소외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국내에서 어김없이 고개를 든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미국이 북한과 고위급 접촉을 통해 탐색적 대화를 시작하려 하자 정부는 남북대화가 먼저 선행되지 않으면 북·미 접촉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 아무 의미도 없는 억지춘향식 남북대화를 형식적으로 가진 뒤에야 북·미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발목을 잡지 않고 몇 개월만 빨리 북·미 접촉이 시작됐더라면 2012년 ‘2·29 합의’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이전에 나왔을 것이고 북핵 문제 양상도 지금과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통미봉남은 최근들어 ‘코리아 패싱’이라는 약간 변형된 형태로 많이 유통되고 있지만, 한국이 북한 문제 논의에서 어떤 식으로든 소외되거나 판을 주도하지 못하면 큰일난다는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 문제에 주인의식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는 것은 백번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이 판을 좌지우지하면서 끌고 나가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국은 그만 한 외교적 역량이 없다. 특히 한반도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변하면서 한국 입지는 더 좁아졌다. 미·중·러 등은 한반도 문제를 서로 견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한반도 사안은 강대국 패권 전략의 일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란 정확히 말하면 강대국의 논의 구조 속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실종되지 않고 국익에 반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북핵 문제를 다루는 다자구도의 속성상 어느 한 나라가 주도권을 잡으려 하면 그 논의는 반드시 깨진다.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자가 다자외교에서는 진정한 승자다. 한국처럼 강대국에 둘러싸인 외교 현실 속에서는 이 같은 태도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남북관계에서도 북한에 끌려다니면 안되겠지만 우리가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면 북한의 호응을 얻을 수 없다.

 

한국의 목표는 한반도 문제를 주도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이 문제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평화를 정착시키고 비핵화 논의를 진전시키는 방향으로 한반도 문제가 진행될 수만 있다면 그 과정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를 비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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