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행정장관 직선제가 불러올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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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가 불러올 파장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9. 3.

중국은 1997년 영국에 강제로 빼앗겼던 홍콩을 되찾으면서 50년 동안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공산당이 통치할 홍콩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자 덩샤오핑(鄧小平)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공존을 해법으로 제시한 것이다. 당시 다른 중국 지도자들은 애당초 홍콩을 반환 협상의 논의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만 덩샤오핑은 달랐다. 홍콩의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10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회주의체제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한 도시에서 자본주의를 실시한들 어떠냐는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일국양제를 덩샤오핑의 천재적 발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이 지난달 31일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방안을 발표한 뒤 홍콩에서는 이제 일국일제로 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중국은 1200명으로 행정장관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위원 50% 이상의 지지를 얻은 사람에게만 행정장관 입후보 자격을 부여하고 후보도 2~3명으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진짜 제대로 된 선거를 하고 싶다는 홍콩 시민들의 희망은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대신 중국은 공산당 권위에 맞선 어떤 도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홍콩 행정장관 관련 주요 일지 (출처 : 경향DB)


홍콩에서는 중국에 대한 불신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홍콩이 중국과 다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제를 보장받고 있다는 생각은 흔들리고 있다. 영국 의회에서는 이번 결정이 1984년 12월 중·영 연합성명을 위반한 것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연합성명에는 1997년 7월1일로 홍콩의 주권을 중국에 반환하되 50년 뒤인 2047년까지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를 홍콩에서 시행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영국의 마지막 홍콩 총독이었던 크리스 패튼은 “영국에는 당시 결정을 중국이 존중하도록 요구할 도덕적, 정치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홍콩 시민들의 분노가 가져올지 모를 정치적 혼란에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다. 보통선거를 실시하게 된 것만으로도 홍콩 시민들은 고맙게 여겨야 한다는 분위기다. 직선제 실시 자체만으로도 정치개혁의 돌파구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이번 결정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지만 중국이 잃을 것도 적지 않아 보인다.

언론자유가 있고 사법부가 독립적인 홍콩은 중국의 미래이기도 했다. 홍콩이 중국 정치개혁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감이 그동안 존재했다. 그러나 중앙정부라는 명분으로 중국이 개입을 노골화하면서 홍콩의 자유민주제도를 통제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고 이 같은 기대감은 크게 낮아졌다.

중국은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대만의 정치세력에 일국양제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해 왔다. 그러나 홍콩 직선제 방안은 중국이 일국양제를 미끼로 던지며 대만과 경제를 통합한 뒤 공산당 일당체제를 심겠다는 플랜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

홍콩 같은 도시를 몇개 더 갖고 싶다던 덩샤오핑은 1997년 2월19일 눈을 감았다. 그해 7월1일 홍콩의 중국 귀속을 불과 4개월여 앞둔 시점이었다. 덩샤오핑이 만약 살아 있었다면 홍콩 직선제 방안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궁금하다. 지난달 22일 덩샤오핑 탄생 110주년을 맞아 중국이 떠들썩했다. 그러나 이번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방안 결정 과정에서 덩샤오핑의 실용주의는 오간 데 없었다. 홍콩을 민주화 실험을 위한 정치특구로 생각한다면 일국양제의 취지를 살리면서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이미지를 크게 개선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일국양제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이 있었던 덩샤오핑과 달리 그의 후대 지도자들은 민주주의가 중국에 미칠 파장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이번 결정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실망감과 반발 강도로 볼 때 중국은 신장·티베트·내몽고에 이어 홍콩이라는 또 다른 아킬레스건을 갖게 됐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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