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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2

[동서남북인의 평화찾기]오키나와 정체성의 표상, 다마키 데니 전주의 시민운동단체 ‘한몸평화’와 함께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기행의 막바지에 이에지마(伊江島)를 찾았다. 오키나와 북부의 모토부(本部)항에서 뱃길로 30분, 10㎞도 안되는 거리다. 둘레 18㎞, 인구 4500명의 땅콩깍지 모양의 조그만 섬에는 2차대전 당시 동양 최대의 군용비행장이 있었으며 섬의 최고봉, 172m의 성산을 둘러싼 공방에서 일본 군민 3500명이 죽고, 1120명의 미군 사상자가 나오는 격전이 벌어졌다. 섬을 점령한 미군은 비행장을 확장하여 훈련장으로 사용했다가 6·25전쟁이 터지자, 북한을 겨냥한 모의핵폭탄 투하훈련장으로 이용했다. 섬의 절반(지금은 20%)이 군용지로 강제 수용되어 주민들은 2년 동안 수용소 생활을 하다 집도 땅도 빼앗기고 내동댕이쳐졌다. 농민들은 1954년부터 토지의.. 2019. 1. 28.
오키나와 ‘독립론’ 오키나와(沖繩)는 1972년 5월15일 이전까지 일본 땅이 아니었다. 당시 오키나와는 미국 땅이었다. 지난달 오키나와에서 만난 지바(千葉) 출신 여성은 1973년 오키나와 남성과 결혼하기 전 데이트를 하기 위해 오키나와를 오고갈 때 여권을 가지고 다녔다고 회상했다. 일본과 미국이 이곳을 지배하기 이전, 오키나와는 ‘류큐(琉球) 왕국’(1429~1879년)이었다. 자신들만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풍습을 갖고 있는 엄연한 독립국가였던 것이다. 최근 이 오키나와에서 ‘독립’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찬반 의사를 물은 스코틀랜드의 주민투표가 진행될 당시, 오키나와 주민들 중 상당수는 “남의 일 같지 않다”면서 깊은 관심을 보였다. 한 오키나와 주민은 “진심으로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2014. 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