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왜 잔디에 목을 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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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지난 시리즈

미국인들은 왜 잔디에 목을 맬까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10. 6.
Lawn People

(
이 제목은 Paul Robbins의 2007에 발행한  'Lawn People'에서 왔음을 밝힙니다.)
 
미국의 중산층 가정의 집들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뭘까?

어느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아빠가 그러는데 도시는 돈 없는 거지나 히피들이 사는 곳이라던데요.” 

주인공들은 원래 살던 교외 주택가에서 도시(뉴욕)로 이사를 가는 중이다.
미국 중산층 사람들은 도시에 살지 않는다. 우리가 잘 아는 나 홀로 집에에 나오는 주택가들은 도시에 있지 않다. 보통은 중심가에서 적어도 30분 이상 떨어져 있는, 이층집에 살고 있다.

일층은 대개 거실이나 부엌 등의 공동으로 쓰는 공간, 이층은 침실로 이뤄져 있는 그런 집들. 누군가 표현하기를 자신만의 성()을 만드는 것이 미국 중산층의 집에 대한 최종 목표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집 앞에는 당연히 잘 관리된 잔디밭이 있어야 한다. 이웃과의 경계는 키가 작은 나무나 혹은 앙증맞은 담장으로 나누고, 자신의 앞 뜰과 뒤 뜰에 있는 잔디를 계절마다 잘 관리해줘야 그럴 듯한 교외의 주택가의 한 일원이 되는 것이다.
겉으로 그럴 듯한. 집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별로 상관하지 않는. 겉으로 우선 깨끗하면 문제없는. 생각해보니 이를 잘 표현한 미국 드라마도 있다. 많이들 들어봤을 <위기의 주부들>.


(출처 abc.com)



그 중에 집 페인트 칠보다 외관상 관리에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것은 단연 잔디밭 관리다.

위기의 주부들에도 이런 에피소드가 나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동네에서 잔디를 잘 관리하지 않으면 상당한 압력이 들어온다.
주민회의에서 그 집 관리가 안되었다고 말이 나와서요, 좀 잘해주세요라고 이웃이 말한다. 그럼에도 계속 관리하지 않으면 이사의 압력까지 들어온다. “이 집 잔디관리가 안돼서 우리 전체 마을 분위기를 망쳐서요하고.

아니 언제부터 잔디가 자기네들 미의식에 그렇게 중요한 것이 되었다고!
여름철에 몸 좋은 총각들이 윗옷을 벗어 던지고 선글라스에 엄청나게 큰 헤드셋으로 음악을 들으며 잔디 깎는 기계를 능숙하게 움직이며 잔디를 깎는 모습은 저런 주택가에 살지 않아도 종종 마주치는 여름날 풍경이다(물론 몸 좋지 않은 아저씨들도 한다). 엄청나게 시끄럽다.
멀쩡한 나무들을 잘도 잘라내면서 왜 저렇게 잔디에 집착들을 한대? 외부인으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미국 사람들끼리도 꽤나 의아하긴 했던 모양이다. 왜 미국인들은 이토록 잔디에 열광하게 되었는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에서 골프장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환경적으로 나쁜지에 대해 인식하는 만큼 미국 사람들은 잔디밭이 미치는 환경적인 요인에 대해서 괘념치 않구나 하고.

우선 답부터 말하자면 그렇지는 않다.
'Lawn People'
을 지은 Paul Robbins(2007)에 따르면 잔디를 주기적이고 화학적으로 관리(해충약, 비료) 하는 사람들이 잔디밭에 관련한 위험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인식하는 경향(more likely)이 있고, 환경에 대한 죄책감 또한 가지고 있다고 한다.
모호한 말이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환경적으로 잔디 관리하는 것이 좋지 않다라는 것을 알면서도 관리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잔디 관리에 대해서 개인적인 도덕적 기준보다는 공동체의 미적 기준이나 공동체에서 삼고 있는 우선순위를 더 우위에 둔다는 것이다. 그 속사정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그의 책에서 조금 더 설명하고 있다.
아주 간단히 요약하자면, 잔디는 몇 사람 혹은 사업(혹은 통틀어 저자는 lawn people이라고 한다)에 의해서 조장된 미적 가치, 미국의 문화라기 보다는 사회 경제적인 요인으로 발생된 현상이다. 계속적으로 주입되는 이러한 미적 기준은, 개개인을 그 제시된 기준에 맞추기 위해 일종의 불안한 상태로 돌입하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자신이 주위와 다를 경우에 들어오는 압력과 마찬가지로 (이 경우엔 온 사회가 동원되지만), 미국의 중산층 가정도 주입된 삶의 가치에 대한 강박을 가지는데, 잔디가 중간 매체로 이를 보여주는 예가 되는 것이다.

불안정한 개인은 끊임없이 자신이 믿는 것과 상반되는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을 조율해야 하며 보통은 조율이라기보다는 집단적 가치나 공동체내에서 요구되는 도덕적 책무에 의해 선택을 강요 받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지금 나는 미국의 잔디를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개방식은 어딘가 익숙하다. 사회는 계속 <남들이 이 정도 할 때 넌 지금 뭐하고 있냐, 난 이걸 가지고 있다 넌 없는데도 노력하지 않고 있다>같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여러 가지 방식으로 주입하고 있다.

계속 걱정하도록.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기준이 영향을 받도록. 혹은 다른 버전의 lawn people들이 계속 이윤을 거둘 수 있도록.

뭐 그게 괜찮다면 상관없다. 문제는 그 결과가 생각보다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것에 있다. 갑작스럽게 변하는 기후처럼. 그리고 그건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부터 차례로 더 극한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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