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인 이슈가 된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 혐한시위와 증오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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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인 이슈가 된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 혐한시위와 증오발언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8. 26.

일본에서 한국인 등을 대상으로 한 헤이트스피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엔이 나서서 경고하는 등, 국제적인 이슈로까지 부상했다.


-헤이트 스피치가 뭔지, 어떤 사례가 있는지.


인종차별적 증오발언을 말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거의 재일 한국인과 조선인 등을 비하하고 공격하는 행동과 동의어처럼 돼 있다. 재일 한국인·조선인 등에 대한 헤이트스피치의 대표적인 사례는 ‘재일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이라는 단체가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일본 교토의 조선학교 근처에서 벌인 시위다. 이 단체는 확성기를 동원해 가두 시위와 방송을 하면서 “조선학교를 일본에서 몰아내자”, “(조선인은) 스파이의 자식”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자신들의 활동을 담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 학교와 학생들은 당연히 심각한 위협을 느꼈고, 수업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갔다.




-도쿄에서도 헤이트 스피치와 혐한, 반한 시위가 줄을 이었다.


도쿄에서도 2011년부터 2014년 7월까지 주일 한국대사관 주변과 신오쿠보 한인 거리 등에서 349의 혐한·반한 시위가 일어났다. 주로 우익단체 등이 연 시위에서는 “재일 바퀴벌레 조선인을 내쫓아라”, “한국인 여성을 성폭행해도 된다” 등의 발언이 쏟아졌다. 한인 거리 상점들은 매출이 줄었고 주민들은 신변의 위협까지 느끼고 있다. 


인터넷에서도 한국계에 모욕을 주는 공격들이 줄을 이었다. 오사카 재일코리안청년연합이 최근 203명의 10~30대 재일 한국인·조선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8.2%가 ‘인터넷에서 헤이트 스피치를 접한 뒤 분노·슬픔·공포를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동안 일본 정부의 대응은.


정부는 그동안 뒷짐만 지고 있었다. 일본은 1995년 인종차별철폐조약에 가입했지만 지금까지 헤이트 스피치를 막기 위한 법적인 장치를 만들지 않았다. 법원이 개별적으로 제기된 소송에서 재특회에 책임을 묻는 판결을 내린 것이 전부다. 조선학교를 운영하는 교토조선학원이 재특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1·2심 재판부는 “조선학교 측에 1200만엔(약 1억2000만원)을 지급하고, 가두방송을 중지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인종차별철폐조약을 근거로 들었다.


-최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재일 한국인·조선인을 상대로 한 일본 내 혐오발언과 시위를 거론하면서 이 문제는 국제적인 이슈가 됐다고.


유엔 인종차별위원회는 지난 2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일본에 대한 심사에서 가두시위와 헤이트 스피치에 ‘우려’를 표명했다. 파키스탄 출신의 한 위원은 “명백한 차별적 언동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고, 루마니아인 위원은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 필요하다”고 못박았다. 위원회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들은 뒤 이번 주 안에 포괄적인 개선 권고 내용을 담은 ‘최종 견해’를 발표할 예정이다.


-유엔의 권고와 관련해, 재일 민단 대표들이 제네바까지 방문했다는데.


재일동포단체 민단 대표단이 제네바를 방문해 유엔 위원회 위원들에게 혐한 시위 실태를 설명했다. 이들은 일본으로 귀국해, 25일 도쿄 미나토구의 민단 중앙본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민단 인사들에 따르면 유엔 위원들이 일본 내 혐한시위의 실상을 접한 뒤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재특회 회원들이 나치 문양 깃발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 등에 위원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민단 측은 유엔이 일본 정부에 대책을 만들 것을 강력 권고하는 보고서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럼 일본 정부도 뭔가 대응책을 만들지 않을까. 향후 움직임은 어떻게 될까.


일본 정부·여당도 뒤늦게 대응책 마련에 나서려고 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 7일 “헤이트 스피치에 확실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고, 집권 자민당은 지난 21일 프로젝트팀을 만들어 혐한시위와 차별적 발언을 규제하기 위한 법률 검토에 나섰다. 일본변호사회 모로오카 야스코(師岡康子) 변호사는 마이니치신문에 “(헤이트 스피치에) 민·형사상 규제와 사회적 통제를 가해야 하는데 일본에는 그런 장치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우익단체는 물론 일본 정부 안에서까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저촉될 우려가 있다’며 규제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실효성 있는 규제 법률이 만들어질지는 미지수다.


-세계 각국은 이런 인종차별적 증오발언을 어떻게 다루나.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증오발언을 범죄로 규정해 철저히 금지한다. 전통적 증오발언은 특정 국적·민족·인종·종교 집단을 모욕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성적 지향·장애 여부 등에 따른 차별 발언도 증오발언으로 분류된다. 


2차 대전 전범국 독일은 증오발언을 매우 강력하게 처벌한다. 독일 형법 제 130조는 특정 집단을 향한 증오를 선동하거나 욕설과 악의적 비방, 명예훼손으로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발언에 대해 최저 3개월에서 최고 5년까지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게 했다. 독일 국민이 외국에서 저지른 증오발언, 독일 내에서 벌어진 외국인의 발언까지 처벌할 수 있다. 


과거사를 부정하는 발언에 대한 처벌 조항도 있다. 나치의 행위를 공개적으로 찬양하거나 정당화해 피해자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발언에는 3년 이하의 징역형, 홀로코스트와 같은 나치의 악행을 부정하는 발언에는 최고 5년의 징역형이 내려질 수 있다. 나치의 범죄행위를 긍정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규정이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는.


프랑스는 형법으로 인종·국적·민족·지역·성별·성적 지향·장애 등에 대한 명예훼손과 모욕, 선동 발언을 금지하고 있다. 이같은 발언을 할 경우 최대 징역 1년, 4만5000유로(약 60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영국은 민족적·인종적 증오를 선동하는 행위를 ‘공공질서법’에 따른 범죄로 규정하고 있으며, 네덜란드·벨기에·노르웨이·덴마크 등도 형법을 통해 증오발언을 금지한다. 


반면 수정헌법 제 1조에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미국은 폭력을 수반하지 않는 증오발언은 대체로 처벌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극우성향의 누리꾼들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비하한 것이 사회문제가 됐고, 최근 특정 종교집단의 동성애자 비하 시위 등이 일어나면서 증오발언에 대한 규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윤희일 도쿄특파원, 남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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