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형 | 서울대 라틴아메리카硏 교수
여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키르츠네르의 대승이 일찌감치 점쳐졌다. 언론은 선거 이후에 대한 보도에 주력한다. 현 대통령 크리스티나는 여론조사에서 52%가 넘는 높은 지지도를 얻었다. 반면 야권 후보는 다섯이 난립한데다, 제2위 후보인 비네르가 겨우 16%의 지지도를 확보하는 데 그쳤다. 나머지 네 명은 모두 10% 미만이다. 선거법에 따르면 1위 후보가 45%를 얻으면 결선투표를 거치지 않고 당선이 확정된다. 40% 이상을 얻고 2위 후보와 10% 차이를 내도 당선이 확정된다. 그러니 1차 투표에서 가볍게 완승할 것이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대통령 | AP연합뉴스 | 경향신문DB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그녀가 인기몰이를 한 비결이다. 부군인 네스토르 키르츠네르가 2003년 첫 임기를 시작했을 때 아르헨티나 경제는 폐허 상태였다. 2001년 페소 위기의 후유증은 깊었다. 국제금융권의 압박 속에서 바닥상태에서 출발한 경제는 다행히 빠른 시간 내에 수출 호조와 내수 확대에 힘입어 높은 성장세를 구현했다. 4년 뒤 네스토르는 부인에게 권좌를 넘겨주었고, 크리스티나는 계속 호경기를 이끌어갔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가졌고, 자녀들의 교육 환경이 놀라보게 달라졌다. 아르헨티나는 브릭스 일원으로 자리를 잡은 브라질보다 훨씬 높은 성장률과 좋은 경제지표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국제 언론은 브라질 경제를 호평한 반면, 아르헨티나 경제를 불신했다. 국제금융권과의 채무 협상에서 아르헨티나가 호락호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장률이 높으면 잠재력이 이미 소진되어 위험한 국면으로 진입한다고 평가했고, 조만간 위기가 닥친다고 말했다. 2009년의 위기에도 디폴트 위험을 경고하고 나섰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경제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거뜬하게 파도를 넘겼다.
외부의 재원이 끊어진 아르헨티나는 경제위기가 가져온 고환율의 축복을 이용했다. 고환율은 수출 부문을 자극했고, 이에 대한 투자를 촉진시켰다. 농산물에 대한 국제수요의 증가와 가격상승도 큰 몫을 했다. 이는 거꾸로 내수를 자극했고, 아르헨티나는 라틴아메리카 국가 가운데 보기 드물게 높은 저축률과 높은 투자율의 선순환 구조를 갖추게 됐다. 발전경제학자들이 브라질 모델보다 아르헨티나 모델이 훨씬 지속가능성이 높고, 위기로부터 안전하다고 평가하는 이유이다.
수출 붐으로 인해 국가재정 상황도 크게 개선됐다. 교육예산은 2003년에 GDP 대비 3% 수준이었으나 2011년 현재 6%에 달한다. 크리스티나가 인기몰이를 한 교육 대책 가운데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실업자와 비공식 부문의 취업자 자녀들의 취학을 지원하기 위해 가구당 45유로를 지원한 것이다. 이 조치로 18세 미만의 학생들이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것을 크게 줄였다.
둘째, ‘평등에 접속하기(코넥타르 이괄다드)’ 프로그램은 소위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여 사회의 불평등을 개선하고자 한다. 선거전 말기에 크리스티나는 300만명에 이르는 중등학생들에게 넷북을 지급했다. MIT 미디어랩의 네그로폰테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것이다. 이를 “인기몰이”니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까? 극심한 빈부격차를 생각한다면, 필요하고 또 유용한 정책이라 수긍할 수밖에 없다.
벌써 선거 이후 정국의 개헌 카드에 대한 관심이 언론을 뜨겁게 달군다. 높은 인기도를 생각한다면 4년 뒤에도 ‘크리스티나 왕국’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메드베데프와 푸틴이 권력을 교대하는 러시아를 닮아갈 것인가? 안타깝게도 쉽게 자신의 바통을 이어줄 남편 네스토르는 이미 서거했다. 그렇다면 의원내각제나 반대통령제를 통해 권력을 분점하는 체제로 나갈 것인가? 좀 더 두고볼 일이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집권여당 연립은 상·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얻을 것이고, 야당은 극심한 분열로 거의 견제 카드를 잃게 될 것이다. 의회는 행정부의 주도권을 견제하기보다는 거수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한 때 “보톡스의 여왕”이라고 비판 언론들은 그녀의 리더십을 저평가했다. 하지만 이제는 거의 여제 수준의 권력을 휘두르며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다. 그녀의 대선 지지도는 페론 이후 최고를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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