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집권 1년을 보냈다. 국내외 평가는 내치에서 보여준 여러 실정들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대외관계는 잘했다는 것으로 모아지는 것 같다. 과반수의 지지율을 떠받치는 데 있어 외교가 큰 공을 세우고 있는 셈이다.
외교수행에 대한 긍정평가의 이유는 몇 가지로 모아진다. 일단 정상외교 및 해외순방의 ‘그림’이 좋다. 강대국 정상회담과 세계평화를 말하고, 주요 국제회의에서 연설하는 모습, 그리고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이나 유라시아이니셔티브 등 대형 외교프로젝트를 과감하게 제안하는 것을 비판하기 어렵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재난에 가까운 외교실패에 대한 반사효과의 측면도 존재한다. 친미일변도 정책으로 인해 최악으로 치달았던 중국과의 관계회복 노력과, 대북정책에 미미하지만 유연성을 보였다는 점은 평가받을 여지가 있다. 그리고 김정은 정권의 도발적 행위들과 아베 정권의 도를 넘는 우경화에 대한 국민의 혐오감은 정부가 이들에 대한 외교를 거의 멈춰버렸음에도 지지하는 역설로 이어졌다.
하지만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행보에도 불구하고 실제 성과나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거의 없었다. 지난 1년이 탐색과 기반조성의 기간이었다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한반도 주변상황은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정부의 외교는 너무 느긋하다. 당면한 외교난제들이 많은데 정부는 난제를 풀기 위해 씨름하기보다는, 쉽고 화려한 외교에 힘을 쏟는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일리가 있고, 선이후난(先易後難) 외교가 때로 필요하지만 적어도 방향은 옳아야 하고, 과정은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5분의 1의 시간 동안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외교행보의 동선이 가리키는 나머지 5분의 4는 기대보다 우려를 낳게 한다.
외교원칙으로 중도론과 균형론을 내세웠지만 대북정책은 물론이고 미·중 갈등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축소하지 못했다.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난처해하면서도 한·미동맹의 프레임에 갇혀있다. 최악의 경우 편을 들고도 미국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중국으로부터 의심을 받는 것일 텐데 우리의 외교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지난해 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의사를 밝히고도 미국에 사실상 거부당한 일과 방공식별구역 사례를 두고 중국과 갈등을 빚은 것은 그 전조일 수 있다.
또한 서울프로세스로 대표되는 중견국가 및 다자주의 외교를 지향했지만 구체성을 결여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이고 규범적인 외교담론이 되고 있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외교가 이미지를 중시하고, 실용보다는 이념과 원칙을 앞세운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여성대통령의 장점을 살린 소위 ‘매력외교’는 겉으로 화려했을지 모르지만 핵심국익을 위한 치열한 외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국제회의에서의 노출빈도만 높아진다고 국익이 커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대북 및 대일외교에서 알 수 있듯이 신뢰나 원칙외교가 도리어 덫으로 작용하여 외교부재 상태로 빠져버렸다.
합리적이고 제도화된 정책결정보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 선호와 이에 편승한 군 출신 인사들이 주도한 정책결정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안보포퓰리즘에 의한 군비증강계획과 전시작전권 환수 재연기 등은 지난 대선에 이어 다시 보수여론을 결집시켰지만, 한반도 정세를 더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안보를 강조하고 단호한 원칙주의를 견지하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집권세력이 외면하기 어려운 정치적 자산일 것이다. 그것이 박근혜 정부의 외교가 바깥보다는 내부 국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문제는 그러는 사이에 실질적인 국익은 새고 치열한 외교전에서 밀려난다는 것이다.
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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