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정부의 외교 아젠다에 북한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주 제68차 유엔총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오바마는 임기 동안 이루고 싶은 대외정책 목표 두 가지를 밝혔다. 이란 문제 해결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 체결이다. 서방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밝혀온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핵무기 개발 의지가 없다고 밝히고, 오바마는 정권교체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평화적 핵이용의 권리를 존중한다는 말로 화답하면서 대화 가능성을 열었다. 또한 첫 임기 때 중단되었다가 재개된 중동 평화회담 역시 오바마 외교의 중심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언급은 연설 어디에도 없었다.
북한에 대한 언급은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오바마를 수행하던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 벤 로즈가 기내 기자간담회에서 북한과 이란을 비교하면서 북한은 핵실험을 실시하고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로 이란과는 다르다고 했다. 이란이 협상을 통해 핵개발을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다는 취지였는데,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공식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을 낳았다. 파장이 커지자 미국 정부는 서둘러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북한의 진정성 있는 행동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협상은 없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평양 문화축전에서 원자(핵무기)를 상징하는 카드섹션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AP연합)
하지만 미국의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북한은 실제적으로 핵보유국이다. 물론 미국으로서는 인정하는 순간 외교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며, 핵확산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불편한 진실을 덮고 현재의 무시전략을 고집하는 것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 문제다. 유엔 연설에서 오바마가 북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고 있는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미 의회조사국의 최근 분석도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정책은 북한 핵기술의 진전을 방임하는 위험한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오바마는 자신의 전략적 인내정책이 세간의 비판처럼 전략부재가 결코 아니며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말려들지 않으면서 효과적으로 비핵화를 달성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대북제재를 말하는 것인데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부호가 커지고 있다. 지난 5년간의 제재에도 북한이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하거나 붕괴하기는커녕 반대로 핵기술은 더 발전했으며 위협은 커졌다. 특히 북한이 우라늄 농축에 필요한 핵심부품들을 자체 생산하고 있다는 미 전문가의 최근 진단은 더 이상 제재나 차단을 통해 막기 어렵다는 것을 말한다. 중국과의 공조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의 변화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현 시점에서 판단하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 제재에 참여하고 종전에 없었던 강력한 대북 경고와 압력을 행사한 것은 맞지만, 미국이 기대하듯이 북한을 처벌하고 항복시키기 위해 힘을 기울이기보다는 설득해서 협상 테이블로 이끄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울렛 초소에서 쌍안경으로 북한을 관측하고 있다. (AP연합)
현재 북한은 중국과 함께 6자회담의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9월 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러시아 역시 중국과 보조를 맞추어 9·19 공동성명의 입장으로 돌아가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하라고 미국을 압박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행동 변화를 조건으로 내걸면서 거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전략적 인내는 명분에서건 실리에서건 얻을 것이 없다. 지적했듯이 제재효과는 감소하고 북한의 핵능력은 커지고 있다. 북한 스스로 항복할 가능성도 없고, 그렇다고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군사적 옵션을 쓸 수도 없다.
북한의 선제적 핵폐기 선언 없이 협상을 수용하면 미국이 굴복하는 것으로 비칠 수는 있다. 그러나 자존심 경쟁으로 얻어질 실익은 없으며, 정세가 바뀌면 정책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북한도 6자회담은 영원히 없다는 기존 발언을 뒤집고 복귀 의사를 밝혔다. 미국도 시리아에 대한 군사공격을 상황 변화에 따라 멈췄다. 전략적 인내는 이미 실패한 정책이다. 개성공단 사례 이후 ‘압박하면 굴복한다’는 프레임에 빠져 북한을 더 밀어붙일 계산을 하고 있다면 오산이다. 이는 한·미의 원칙론의 성과가 아닌 중국의 설득에 기인한 바 크다. 그래서 미국이 회담에 가서 비핵화를 적극 요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북한 외에는 아무도 북의 핵무기 보유를 찬성하지 않는다. 지금은 미국의 반대편에서 대화압력을 가하는 중국과 러시아도 회담이 성사될 경우 미국의 비핵화 요구에 동조할 것이다.
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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