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라 원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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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잘가라 원자력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9. 20.

염광희 베를린자유대학 박사과정 연구원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난 지 반년이 흐른 9월 12일 오전, 이번엔 지구 반대편 프랑스에 있는 핵 재처리 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해 한 명이 사망하고 네 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프랑스 원전 당국은 화재는 진압되었으며 외부로의 방사성 물질 노출은 없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독일 언론 슈피겔은 사고가 발생한 상트라고 재처리 시설 주변 분위기를 전하면서, 정부의 안전하다는 공식적인 발표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고 헤드라인 기사를 통해 얘기하고 있다. 프랑스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자신들의 원자력 확대 정책을 굽히지 않는, 전체 전력의 75%를 원전에서 공급받는 핵 의존국가이다.

원자력발전소나 핵관련 시설의 사고는 다른 어떤 사고와는 달리 예민할 수밖에 없다. 자연과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선을 내뿜는 물질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고가 발생한 지 25년이 지난 체르노빌은 아직까지도 반경 30km 이내로의 출입이 통제중이다.
후쿠시마도 발전소 주변 20km 이내로는 자유로이 드나들 수 없는 금단의 땅이 되었다. 지난 8월 말 간 나오토 전 총리는 후쿠시마현 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일부 지역은 방사능 오염 물질을 제거해도 사람이 살기 어려울 수 있다고 밝힌 뒤 그 자리에서 사죄했다고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조사팀이 후쿠시마 원전 3호기를 살펴보고 있다. (경향신문DB)



핵 관련 사고가 더욱더 불안한 이유는 사고의 실상이 원자력 산업계와 정부에서 나오는 정보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그 일방적인 구조의 한계 때문이다. 상트라고 시설의 화재에서 방사선이 누출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는 주변에 사는 일반인들이 스스로 느낄 수도 알 수도 없다. 핵시설 관계자가 알리기 전까지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슈피겔은 핵시설 인근 레스토랑 주인의 얘기를 전한다. 사고가 발생한 지 두 시간이 지나서야 핵시설 측으로부터 전화 한 통 받았다고 한다, “아무런 문제없소!” 후쿠시마 발전소에서 50km 떨어진 곳에 살았던 우노 사에코씨는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나와 내 아이의 생명을 정부가 지켜주리라는 기대를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증언한다. 사고 직후 그녀가 방송을 통해 들었던 대부분의 뉴스는 “원자로가 자동 정지됐으니 안전하다”라는 정부의 발표였다고 한다.


지난 9월 1일 한수원은 부산 인근에 위치한 고리에 아홉 번째, 열 번째 원전 건설을 위한 환경영향평가 설명회를 열었다. 고리 원전으로부터 30km 반경에는 320만 명의 시민들이 살고 있다. 김관용 경북지사는 울진, 영덕, 포항, 경주 등 동해안 일대에 원자력클러스터를 유치해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후쿠시마 일대가 핵사고 이후 사람의 출입이 전혀 없는 폐허의 땅으로 변한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핵 관련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 위험한 기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올 핵사고 소식에 눈과 귀를 모으고 사태가 어떻게 확대될지 노심초사해야 한다. 21기의 원자력발전소를 가동 중인 우리나라는 2024년까지 14기를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원전을 가동하는 그야말로 핵 지뢰밭을 만들겠다는 심산이다.
정부는 값싼 전력 공급을 볼모로 국민들에게 원전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은 결코 값싼 에너지원이 아니다. 후쿠시마의 피해를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수백 수천 년간 자연으로부터 완벽하게 격리시켜야 하는 핵폐기물의 관리 비용은 전기 요금에 들어있지 않다.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에서 고리원전 1호기 폐쇄를 요구하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DB)


원전 기술은 사람 죽이는 재앙의 기술이다. 벌레 잡겠다고 사람 죽이는 DDT를 쓰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는 않는다. 값싸게 음식 조리하겠다고 발암물질인 석면심지가 들어있는 곤로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돈 덜 들이고 배불리 먹이겠다고 아이들에게 출처를 알 수 없는 불량식품 사 먹이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모를 때야 그러려니 하지만, 부정적인 영향을 알면서도 사람 죽이는 기술을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후쿠시마 재앙과 계속되는 핵사고가 우리에게 얘기해주는 것은 딱 하나, 이제 이 사람 잡는 기술과 이별하라는 것이다. 이제는 떠나보내자. 잘가라 원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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