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5일 미국 국방부의 의장행사에 참석하고 있을 때 워싱턴 외신기자클럽에서는 미국계 베트남인 여성 활동가가 주최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베트남전 참전 한국군인들에 의한 베트남 여성 성폭력에 대해 박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베트남의 목소리’라는 단체는 베트남에 있는 피해자들을 화상 전화로 연결해 피해 경험을 들려줬다. 어머니가 한국 군인 두 명에게 성폭행을 당해 자신과 누이들이 태어났고,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곤 했다는 45세 남성의 얘기에서 시작해 그의 어머니 등 네 명의 여성이 나와 증언했다. 이 단체는 그런 피해자가 수천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을 돕고 있는 놈 콜맨 전 상원의원은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이 문제로 베트남 국민들에게 사과했을 당시 야당 부총재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그 성명을 비판했다”며 “박 대통령은 자신의 아버지가 보낸 군대가 베트남에서 저지른 조직적인 성폭력 범죄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주최로 열린 '3ㆍ8 세계여성의 날 및 나비기금 발족 2주년 기자회견'도중 한 참석자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범죄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_서성일 기자
낯설지 않은 사례들이고, 나라와 사람 이름만 바꾸면 어쩐지 익숙한 표현이다. ‘왜 하필 이 시점에?’라는 질문에 이 단체는 “마침 박 대통령이 미국에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급조된 행사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들은 성폭력 피해자 수천명의 근거를 분명히 제시하지 못했다. 또 “박정희 대통령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는데 ‘조직적 범죄’라면 그 범죄에 미국도 연루돼 있다고 봐야 되느냐”는 질문에 전직 미국 상원의원은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들의 활동 뒤 일본 정부의 작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박근혜 정부를 흠집내기 위한 의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인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이 단체는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성폭력 피해자로 이 일을 시작했지만 전시하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증언하면 그 누구라도 옹호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여기에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한국군에 피해를 본 베트남 여성들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전시 성폭력 피해자로서 연대하는 것, 전쟁의 피해자들이 민족 감정에 이용되기보다 서로 고통을 어루만지고 그 기억을 함께하는 것 말이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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