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로메로의 뒤늦은 시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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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로메로의 뒤늦은 시복식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6. 14.

지난 5월 말 중앙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에서는 1980년 3월24일 미사 도중 총격을 받고 사망한 오스카르 로메로 대주교의 시복식이 열렸다. 약 25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교황청의 특사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은 로메로 대주교를 공경의 대상인 복자(福者)로 공식 선포했다. 또 아마토 추기경은 대주교의 ‘빈민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 이념이 아니라 복음에 바탕을 둔 행위였다고 설파했다.

시복식 행렬에는 1980~1992년의 폭력적인 내전을 겪어낸 이들뿐 아니라 더 젊은 세대와 이웃 국가의 신자들도 포함돼 있었다. 1980년대 초 이래 복음주의적 개신교 종파의 꾸준한 확대(38%)로 국가의 종교 구성 비율이 다소 변했지만, 수많은 엘살바도르인들은 암살당한 대주교를 ‘성(聖) 로메로’라고 부르면서 기적을 행하는 인물로 여겨왔다. 국제공항에는 대주교의 이름이 붙었고 입국심사 도장에는 그의 작은 초상화가 새겨졌다.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의 한 건물에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대형 사진이 내걸려 있다. 엘살바도르 군사 독재정권에 저항하다 1980년 미사 도중 암살당한 로메로 대주교는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순교자로 인정받았으며 지난 달 23일 시복되었다. _ AP연합


이런 국민적 추모와 기억을 감안할 때, 이번 시복식은 꽤 지연된 행사였다고 할 만하다. 이런 지체는 로메로 대주교가 분열된 엘살바도르에서 오랫동안 ‘논란의 인물’이었다는 사정과 맞물려 있다. 1970년대 말 군부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농민들과 활동가들에 대한 국가방위대, 경찰, 암살단의 납치, 고문, 즉결 처형 등 정치적 폭력의 종식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살인하지 말라’는 신의 법을 어떤 인간의 명령보다 우선시하며 양심을 회복할 것을 간청한 로메로 대주교는 다른 한편에서 성직자라기보다 게릴라의 후원자나 정치적 인물로 평가받았다. 라틴아메리카의 일부 추기경들은 대주교의 죽음이 설교가 아니라 정치적 참여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오랫동안 그의 시복시성을 막아왔다.

약 8만명의 사망자와 1만2000명의 실종자를 낳는 극단적 대립이 지속되면서 암살 사건의 처리 과정은 원활히 전개되지 못했다. 1992년 내전 종식을 이끈 평화회담 이후 유엔의 후원으로 진실위원회가 설립되고 이듬해에 전직 군 장교 로베르토 도뷔송 휘하의 암살단이 대주교의 암살을 자행했다는 결론이 내려졌지만 아직까지 그 사건과 관련해 어느 누구도 기소된 바 없다. 1981년 ‘국민공화동맹(ARENA)’을 창당한 도뷔송은 1992년에 사망했으나 이 정당이 1989년부터 2009년까지 연속 집권하는 데 필요한 초석을 놓았고 이 정당은 진실위원회의 조사결과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정치화된 추악한 대결의 시대를 거치면서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성직자에 대한 사악한 범죄행위의 자초지종뿐 아니라 그 인물 됨됨이마저 왜곡되고 말았다. 로메로 대주교의 친구 헤수스 델가도 신부가 증언한 대로 애당초 서재에 파묻혔던 대주교는 정치적인 사제라기보다 첨예한 정치적 갈등의 시대를 살았을 뿐이다. 더욱이 대주교는 정부에 저항하면 나쁜 인물로 치부되는 끔찍한 단세포적 사고에 억압당했을 뿐이다.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는 암살사건 발생 30년 만인 2010년 3월에야 처음 이루어졌다. 1992년 내전 종식 후 엘살바도르의 첫 좌파 대통령이 된 마우리시오 푸네스는 성명서를 통해 로메로 대주교를 “불법적인 폭력의 희생자”로 지칭했다. 오랫동안 진전되지 못한 로메로 대주교의 복자 추대는 2012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결정으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고 올해 초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메로 대주교가 “신앙에 대한 혐오 탓에 순교당했다”고 선언하면서 논란을 마무리하려 했다. 시복시성을 계기로 로메로 신부가 분열된 채 서로 다른 기억을 쌓아가는 전투의 소재나 유품이 아니라 엘살바도르인들이 겪어온 대립적 현대사의 표상으로, 정치와 신앙 간의 단순하고 부당한 이분법을 극복하는 본보기로, 조금씩이나마 불신과 무관심을 걷어내고 엘살바도르인들을 묶어내는 구심점으로 자리 잡게 되길 바란다면 너무 큰 기대일까.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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