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시리아 사태 해결과 쿠르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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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시리아 사태 해결과 쿠르드 문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8. 20.

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작년 2월 나는 시리아 내전이 막 발발하려는 순간에 수도 다마스쿠스 시내 한 카페에서 전통적인 아랍 이야기꾼의 입담에 빠져있었다. 수천년 역사고도인 다마스쿠스와 알레포 도시 곳곳에는 인류역사의 자존심과 고전적 품격이 아직도 그득하고, 좁은 골목에는 고대종교, 동방정교, 기독교, 이슬람이 섞인 채 사원, 교회, 모스크가 한 이웃으로 만나는 공존과 화합의 일상이 펄펄 살아있었다. 책상 앞 인문학자의 편견이 여지없이 깨어지던 지적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시리아가 지난 17개월간의 내전으로 2만명 이상의 민간인을 잃고, 20만명 규모의 해외난민과 150만명 이상의 국내난민을 양산하면서 비탄과 증오의 무대로 돌변해 버렸다.


 이제 시리아의 참극에 희미하나마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엔의 중재가 실패로 끝나면서 아랍연맹에서 시리아의 퇴출이 결정되었고, 지난 8월14일에는 이슬람권의 유엔이라 할 수 있는 이슬람협력기구에서 회원국 자격이 정지되기에 이르렀다. 직계 총리 리아드가 요르단으로 망명하고 최측근 군부실세들이 차례로 이탈하면서, 바샤르 아사드 정권의 버티기가 한계에 도달한 느낌이다. 아사드 이후 시리아를 노리는 국가 간 경쟁과 셈법도 그만큼 분주해졌다. 다수파인 수니 반군들은 소수 알라위파 친정부 세력에 대해 처절한 보복을 공개적으로 다짐하고 있고, 미국은 서둘러 시리아 개입을 준비하고 있다. 시리아 상공에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적극 고려하면서, 정권과도기의 혼란에 화학무기가 테러조직에 흘러들어갈 수 있다는 특유의 궤변으로 지상군까지 파견한다는 시나리오가 흘러나오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한 시리아 분할 음모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이스라엘 위협 국가의 하나인 시리아를 종파별로 분열시켜 적대적 위협을 제거한다는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확고한 전략의 하나였다.


시리아 국가보안기구 건물에서 폭탄테러가 발생,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다. (출처: 경향DB)


시리아 사태에서 간과할 수 없는 또 다른 뇌관이 쿠르드족 문제다. 터키가 처음부터 강한 반 시리아 노선을 취한 것도 쿠르드 문제였다. 시리아는 이라크 북부와 함께 지난 30여년 동안 쿠르드 무장세력들이 터키를 공격하는 전초기지였다. 그 결과 4만명 이상의 터키 군인과 민간인이 쿠르드노동당(PKK)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쿠르드족은 현재 약 3000만명 규모의 중동 최대의 소수민족으로 1923년 이후 중동 5개국에서 분산 거주하고 있다. 이라크에서만 제한된 자치와 문화적 정체성이 인정되고 있지만, 터키, 이란, 시리아 등지에서는 철저한 정체성 부정과 동화정책에 희생되었다. 


최근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협상 과정에서 쿠르드 언어 사용은 물론 쿠르드어 교육과 방송을 허용하면서 다시 쿠르드 자치투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시리아 쿠르드족들도 예외가 아니다. 시리아를 종파-종족으로 분리해 약화시킨다는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해와도 맞아떨어지고, 이란과 이라크도 터키 약화 카드로 내심 반기고 있어 이 절호의 기회를 시리아 쿠르드족이 놓칠 리 없다. 이미 이라크 쿠르드는 미국에 협력하면서 전쟁직후 석유라는 엄청난 이권확보에 성공했고, 터키 급진 쿠르드세력들도 유럽연합을 등에 업고 무장투쟁을 강화하고 있다. 이제는 시리아 쿠르드족 차례다. 문제는 터키다. 터키정부가 군사개입을 해서라도 쿠르드 무장조직이 깊숙이 간여하는 시리아 내 쿠르드 자치정부의 출현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시리아 바샤르 정권의 붕괴는 그동안 팔레스타인 이슈에 묻혀있던 쿠르드 문제가 표면화되면서 시리아-터키 접경지대에서 쿠르드 자치구역의 생성이라는 또 다른 중동분쟁의 불씨를 점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막기 위해 터키와 미국은 시리아의 분열보다는 느슨한 통합의 형태를 선호하겠지만, 바샤르가 뿌려놓은 증오와 복수의 씨앗이 너무 커서 알레포 골목 안의 수천년 지켜온 공존정신이 유지될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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