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학기 필자의 외교정책 수업을 싱가포르 교환학생이 수강했다. 그 학생으로 인해 필자는 20년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한 사건을 떠올렸다. 1994년 3월 싱가포르 법원은 마이클 페이라는 10대 미국 학생에게 태형 6대, 징역 4월, 벌금 2200달러를 선고했다. 길가에 주차한 승용차 여러 대에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리고 도로표지판을 훔친 혐의였다.
당시 마이클 페이로부터 페인트 세례를 받은 여러 승용차 중 한 대가 바로 필자의 외교정책 강의를 들은 싱가포르 교환학생 집의 차였다. 그의 가족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역사의 현장에 섰고, 싱가포르의 국격(國格)을 높이는 데까지 일조하게 됐다.
172.6-옛날의 태형 (출처: 경향DB)
문제는 태형(笞刑)이었다. 형틀에 죄수의 몸을 묶은 후 엉덩이 맨살에 교도관들이 굵은 나무회초리를 내리친다. 건장한 남성도 몇 대 맞으면 혼절하기 십상이다.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형벌이라는 국제사회의 비난이 있지만 싱가포르는 법질서 차원에서 영국 통치시절부터 지금까지 태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클린턴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 그의 선처를 호소하는 한편 태형 집행 시 싱가포르가 받을 불이익을 암시하는 친서까지 보냈다. 미국인의 싱가포르 관광 중단과 미국 기업들의 철수 엄포도 놓았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도 태형은 구시대의 야만적 형벌이라며 보편적 인권을 중시하라고 싱가포르 정부를 압박했다.
웬만한 국가들은 나가떨어졌겠지만 싱가포르는 달랐다. 리콴유(李光曜) 전 총리를 비롯한 싱가포르 지도자들은 단호했다.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국가의 근간이 흔들릴 것을 우려했다. 태형의 집행에 있어 외국인도 예외일 수 없었다. 원칙의 고수와 공평한 적용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페이가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태형을 집행하지 않을 경우 국내외적으로 싱가포르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된다. 자국 국민에게만 엄하게 대한다면 국민들은 지도자들을 비웃을 것이다. 다른 외국인들도 마찬가지다. 중국도, 일본도, 러시아도 예외를 요구할 것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결국 1994년 5월 양국관계를 고려한 싱가포르 대통령의 관용으로 당초 6대에서 4대로 낮춰 태형을 집행했다. 인구 400만의 소도시국가 싱가포르는 세계 초강대국 미국으로부터 당당히 자국의 법과 권위를 지켜냈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이 이제 50일 앞으로 다가왔다. 신정부의 외교는 1994년 싱가포르의 사례에서 배울 것이 많다. 싱가포르는 최대무역국이자 군사동맹국인 미국에 ‘노(No)’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마이클 페이 사건’은 오히려 싱가포르에 득이 됐다. 국내적으로 정부의 권위를 세움으로써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외교적으로 예의 바르고 건전한 양국관계로 거듭났다. 싱가포르에도 수백명의 미군 병력이 주둔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미군 관련 특별한 사건사고가 없다. 신정부의 원칙 있는 법 집행은 주한미군의 일탈사건을 대폭 줄일 것이다. 원칙 있는 대미정책은 한·미동맹의 향후 관계설정과 함께 원자력협정 개정,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 현안을 휠씬 호혜적으로 풀어나가게 할 것이다. 중국, 일본, 러시아, 북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원칙과 명분이 있는 대외, 대북정책은 한국을 ‘졸(卒)’로 보지 못하게 할 것이다.
원칙을 세우면 만사가 편해진다. 싱가포르가 작은 영토와 적은 인구에도 국제사회 발언권이 큰 것은 태형 때문이 아니라 원칙과 명분에 근거해 그것을 공평하게 집행했기 때문이다. 원칙과 명분에는 강자가 없다. 새정부의 대외정책도 원칙과 명분에 근거해야 한다. 싱가포르처럼 누가 뭐라고 하든 태형을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6대에서 4대로 내리는 센스. 그 길만이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길이다.
'경향 국제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제칼럼]닻 올린 오바마 2기 (0) | 2013.01.21 |
---|---|
[국제칼럼]중동을 읽는 5가지 포인트 (0) | 2013.01.13 |
[사설]새해 동북아 대외환경이 어둡다지만 (0) | 2012.12.30 |
[국제칼럼]대처, 메르켈 그리고 박근혜의 길 (0) | 2012.12.30 |
[국제칼럼]‘동북아 2013’에 대한 우려 (0) | 2012.12.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