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한양대 교수·중동학
11년 끌어온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미국이 결국 포기하기로 했다. 분노와 고통, 수많은 인명살상과 파괴만을 남기고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애초부터 해서는 안될 전쟁이었고, 결코 이길 수도 없는 전쟁이었다.
2001년 10월,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13만명이라는 군대가 동원되었다.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에 숨어 있고, 탈레반의 적극적인 보호를 받아왔기 때문이었다. 탈레반은 미국의 신병 인도요청에도 불구하고 구소련을 막아내기 위한 항쟁의 동료였던 오사마 빈 라덴을 버릴 수 없었다.
사실상 9·11테러 훨씬 이전부터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의 공격목표였다. 새롭게 차지한 카스피해 원유를 인도양으로 수송하기 위해서는 이란이라는 난공불락의 반미국가 대신에 아프가니스탄이 꼭 필요했다. 동시에 이 나라는 중국과 이란, 파키스탄과 인도를 사이에 둔 전략적 요충지였다.
1989년 소련군을 몰아낸 직후부터 시작된 오랜 내전을 극복하고 등장한 정권이 탈레반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가혹한 여성 차별과 2001년 3월 바미안 석불 같은 인류의 보편적 문화유산에 대한 파괴로 악명을 떨쳤다. 2007년에는 한국인 선교사 23명을 납치하여 그중 두 명을 살해하는 잔혹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그들은 한때 아프가니스탄의 유일한 합법정부였고 적어도 혼란기의 의식주 공급체계 확보와 민생을 책임지는 정치집단이었다. 그 역할은 중앙정부의 도움이 미치지 않는 파키스탄 접경지대의 남부지역에서는 현재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차량이 지나는 길목에 서서 반전 시위하는 여성 ㅣ 출처:AP연합뉴스/경향DB
불행히도 아프가니스탄에서 펼친 미국의 대테러전쟁 11년의 주적은 결과적으로 남부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이었다. 나토군의 공격으로 숨진 희생자의 대다수는 무고한 민간인들이었다. 풀뿌리 조직인 탈레반이 시민들 삶 속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탈레반을 궤멸시킨다는 것은 다른 말로 아프가니스탄 국민 대다수를 없애겠다는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 아프가니스탄인권모니터(ARM)의 통계를 보면 2010년에만 민간인 사망자 수가 최소 2421명에 부상자 3270명으로 밝히고 있다. 미군 당국이 자국민 희생자만 집계하고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피해 통계를 발표하지 않아 누구도 정확한 실상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국제인권단체들의 통계를 분석해 보면 개전 이후 11년간 수만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연합군의 사망자는 3007명에 달했다. 이제 원점으로 돌아가서 탈레반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권력을 분점하고 아프간인들에게 나라를 넘겨주고 떠나겠다는 엄숙한 선언을 했다. 자신들만의 국익을 위해 그동안 약 1조달러(약 1160조원)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수만명의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사람 사는 기반을 초토화시키면서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떠날 준비를 한다. 이라크전쟁 때도 그랬듯이 사과 한마디 없다.
탈레반은 분명 나쁜 정권이다. 아무리 나빠도 외국군대의 지배를 선호하는 아프간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부족과 종교로 뭉쳐진 공동체 기본 성격에서 보면 비록 상대가 탈레반이라고 해서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필요한 물자를 공급해 주지 않을 방도가 없다. 그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고 공동체 삶의 기본 방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민들과 탈레반을 분리하는 전략이 성공할 수 없다면 애초부터 그 전쟁의 승리는 불가능한 것이다. 미국이 이 사실을 깨닫는 데 꼭 11년이 걸렸다.
21세기 가장 추악한 전쟁으로 문명의 수치로 기록될 이라크 침공에 우리 정부도 자이툰 부대를 보냈다. 전후 복구라는 거창한 경제논리를 부르짖었건만 정작 우리 기업은 아직 이라크에 본격적으로 진출조차 못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도 지방재건팀 이름으로 우리 군대가 가 있다. 미국의 결정만이 글로벌 스탠더드이고 한·미동맹만이 국익의 전부라는 냉전적 사고방식이 언제까지 되풀이될지 답답하기만 하다.
'경향 국제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리아에 개입할 수 없는 오바마 (0) | 2012.06.03 |
---|---|
[이일영 칼럼]개성은 ‘글로벌 지역’이다 (0) | 2012.05.29 |
[특파원칼럼]개혁 시험대 오른 중국 경제 (0) | 2012.05.23 |
[국제칼럼]프랑스 정치, 한국 정치 (0) | 2012.05.20 |
[기자 칼럼]대통령의 동거녀 (0) | 2012.05.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