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막판 추격을 받고 있지만 확보 선거인단 수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우위를 지키고 있다. 버락 오바마 1기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내면서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데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이 클린턴이기 때문에, 당선된다면 차기 정부에서도 대외정책의 큰 틀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기반으로 미국적 가치와 이념을 전파하고 미국의 리더십을 강화한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미국은 2014년 3·4분기 경제성장률 5%를 기록했다. 2015년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는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미국은 두 차례의 전쟁과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재정적자가 커졌고, 이는 여전히 복구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글로벌 리더십 강화를 외치면서도 동맹국들과 파트너들의 지원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클린턴 정부도 이와 같은 ‘역외균형’ 전략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가 유세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큰 틀은 비슷하지만 오바마와 클린턴의 차이점도 적지 않다. 오바마가 중국 등 강국들과의 협력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거버넌스’에 의존하려 했던 것과 달리 클린턴은 미국 주도하에 동맹국들이 좀 더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오바마보다는 행동지향적이다. 경우에 따라 군사적 옵션도 선택사항으로 고려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차이는 중동정책에서 잘 나타난다. 이란 핵합의를 이루고 이스라엘과의 갈등도 불사했던 오바마와 달리 클린턴은 이스라엘과의 전통적인 유대관계를 내치지 않을 것이다. 이란이 핵합의를 어길 경우 군사적 압박도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다. 미국의 강경파들은 이란이 테러지원국이며,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고, 중동 분쟁들에 개입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클린턴은 이란 핵합의 성과를 계승하겠다고 했으나, 이란에 대한 비판을 철회한 적은 없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은 적극 추진할 것이다. 클린턴 캠프의 중국 전문가들은 미국의 경제력이 회복되고 있는 지금이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적기라고 본다. ‘규칙을 기반으로 한 국제질서’ 속에 중국을 옭아매려는 현 정부의 정책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요한 것은 클린턴 캠프 인사들의 중국 피로감(China Fatigue)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에 호의적이었고 체제의 차이를 인정했으며, 국제사회에서 G2로 불리는 중국의 역할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진핑(習近平) 체제 이후 중국의 행보를 보면서 중국이 미국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미국 측의 실망감이 매우 커졌다. 다만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중국에 타격을 줄 만한 정책이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클린턴의 대북정책은 제재를 중심으로 하는 오바마 정부와 유사할 것이다. 국무장관으로도 거론되는 웬디 셔먼 전 국무차관은 지난 5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연설하면서 이란과 경제구조가 다른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더욱 포괄적인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핵심은 중국이 국제사회의 대북정책과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를 대북정책의 근간으로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더욱더 고도화될 경우 북·미 대화로 국면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발간된 미국 외교협회(CFR) 보고서는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는 문턱을 낮추고 제재와 대화를 병행해야 한다는 권고를 담았다.
한국에는 세 가지 과제가 있다.
먼저 한·미동맹을 지역적으로 운용하기를 원하는 미국의 요구는 한·중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부담거리다. 이미 북한 핵·미사일 위협은 한반도를 벗어나 동북아 지역의 문제가 돼버렸다. 북한 문제를 한반도에 한정하지 말고 지역화해서 한·미동맹의 운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두 번째로 미·중 대결구도에 대비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얽혀 있는 두 나라가 서로 ‘칼은 겨누되 찌르지 못하는’ 형국이 지속될 수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마지막으로 북한 비핵화 대화 재개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현재 미국 내부에서는 제재 중심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으며, 북한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는 정책 흐름을 바꿀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북한 문제를 미·중이 점유하고 한국이 주도하지 못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
김현욱 | 국립외교원 교수·미국 대선 보도 자문위원
'경향 국제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혜인의 에르빌 통신]겨울 맞는 난민촌 추위보다 힘든 건 사라져버린 ‘희망’ (0) | 2016.11.04 |
---|---|
[기고]미국 대선이 우리에게 안긴 과제 (0) | 2016.11.04 |
모술의 ‘동상이몽’ (0) | 2016.10.31 |
[사설]미 정보국장의 북핵 동결 타협안을 주목한다 (0) | 2016.10.27 |
[안희경의 미국 대선 리포트]진흙탕 싸움 속에서도 빛난 클린턴의 ‘에너지 개혁정책’ (0) | 2016.10.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