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딜레마에 직면한 일국양제의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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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기고]딜레마에 직면한 일국양제의 해법

by 경향글로벌칼럼 2020. 1. 23.

중국은 개혁·개방 직후부터 불균형 발전전략에 해당하는 해안가 경제특구제도를 성공리에 운영해 왔다. 오늘날 중국몽을 선도하는 세계도시로 성장한 광저우와 상하이가 대표적 사례이다. 이러한 자신감에 힘입어 하나의 중국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자 홍콩과 마카오, 대만을 환수하는 전략으로 일국양제를 채택했다. 한때 순항하던 일국양제는 송환법 반대 시위와 여행비자 규제 그리고 민주진보당의 재집권으로 인해 정책딜레마가 가중된 상태이다.


특구제도 시즌 2를 선도한 홍콩은 1997년 중국이 영국에서 환수한 직후만 해도 안정적인 특별행정구를 지향했다. 당초 홍콩은 중국의 주권회복 이후에도 자율적 통치를 허용한다는 ‘항인치항(港人治港)’과 기존의 제도를 유지한다는 ‘50년불변(五十年不變)’의 원칙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홍콩은 중국화의 부작용인 부동산 가격 급등, 고급 두뇌 유출, 해외자본 이탈에 시달려 왔다. 급기야 홍콩의 대체재인 선전과 상하이의 추격으로 문화와 금융에 기반한 홍콩의 추락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비관론이 이번 송환법 사태의 기저에 자리한다.


포르투갈에 조차된 마카오는 대항해 시절부터 개항장 역할을 했다. 1999년 반환된 마카오엔 역사지구 산정에 자리한 몬테 요새를 비롯해 예수회가 조성한 마카오 박물관, 마테오 리치의 동상, 물결무늬 보도 등이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마카오를 끌어가는 원동력은 카지노 지구의 복합리조트다. 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윈을 비롯해 라스베이거스를 대표하는 다국적 기업도 유치했다. 하지만 중국의 부패 통제와 비자 규제가 강화되면서 마카오 경제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중국이 추구하는 마지막 특별행정구 대만은 최근 민주진보당 차이잉원의 총통 재선으로 양안의 사이가 벌어졌다. 대만은 청일전쟁 직후인 1895년 일본에 넘어갔다가 중화민국이 환수한 직후인 1949년부터 분단 상태이다. 장제스를 따라서 1949년 해협을 건넌 외성인은 자치와 평화를 갈망하는 토착민들의 소망을 외면했다. 하지만 2000년 장기집권에 실패한 국민당은 이후 일국양제에 호의적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다. 반면 2020년 재집권에 성공한 민주진보당 정부는 미국과 일본의 안보 우산을 앞세워 독립까지 표방하고 있다. 이처럼 본토와의 관계 설정을 둘러싼 내부의 이견은 넘기 어려운 장벽이다. 따라서 항구적 평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대만 정부가 냉전구도 회피라는 글로벌 거버넌스와 자치분권 강화라는 로컬 거버넌스의 조정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연초에 대만과 홍콩, 마카오를 둘러보았다. 일국양제를 둘러싼 치열한 갈등의 현장에서 남북관계를 성찰했다. 우리의 미래는 북·미 간 대치구도의 완화, 금강산 관광의 점진적 재개, 상대방 체제를 인정하는 공존공영 등에 달려 있다. 물론 이러한 정책수단은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난제들이다. 하지만 중국의 일국양제를 제대로 학습한다면 지연과 회피에 의존한 기존의 대응전략을 탈피해 정책 딜레마의 혁신적 해결도 촉진될 것이다.


<김정렬 | 대구대 도시행정학과 교수·<세계일주로 배우는 사회탐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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