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아프가니스탄의 미래에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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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기고]아프가니스탄의 미래에 희망을 본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20. 3. 20.

지난달 29일 무장조직인 탈레반과 미국 간 합의 도출을 계기로 아프간이 평화와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열렸다. 이번 합의의 골자는 1만6000명의 미군과 다국적군이 단계적으로 완전 철수하는 대신 탈레반은 테러활동을 중단하고 아프간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포괄적인 정부 수립에 협력하는 것이다. 9·11테러로 촉발돼 19년째 이어온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 끝나고 앞으로 2년 내에 미군 철수가 완료될 가능성이 보인다.


최대 관건은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 간의 협상이다. 아직은 회의적 전망이 많다. 아프간 정부는 지난해 실시된 대통령선거 여파로 지도부가 내분을 겪는 상태여서 탈레반과의 협상을 위한 대표단 구성에 합의를 이룰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국토의 절반 정도를 장악하고 있는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를 괴뢰 정부로 취급하면서 직접대화를 거부해왔다. 협상과정에서 여러 세력의 집합체인 탈레반의 내분과 강경파의 득세도 우려된다. 


그럼에도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는 것은 무엇보다 관련 당사자들이 모두 고통스러운 현실에 너무 지쳐있다는 점이다. 아프간 국민들은 1979년 소련의 침공부터 지금까지 40년간 전쟁을 겪으며 아시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해외 난민도 수백만명에 이른다. 탈레반은 미국과의 직접 협상으로 이미 정치적 위상이 높아졌다. 특히 제재 해제 등의 합의가 이행되면 합법적 정치단체로 탈바꿈할 수 있다. 정권을 잡아본 경험이 있는 탈레반으로서는 포기하기 어려운 인센티브다. 미국 역시 끝이 보이지 않았던 전쟁에서 ‘명예로운 철수’가 필요하다. 국내적으로도 정치적 타협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데 초당적 공통 인식이 있다.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의 협상은 국제사회의 후원 아래 아프간 주도로 이뤄지므로 결국 아프간의 미래는 아프간 국민들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나 협상의 결과는 아프간만이 아닌 국제사회의 것이기도 하다. 원만한 협상 진행과 치안 확보, 경제 재건 등을 위해선 국제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미 노르웨이 등 여러 국가에서 장소 제공 등 협상을 후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나라도 세계 10위권의 국력에 부합하게 지난 20년간 아프간 재건과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해 총 10억달러 규모를 원조해왔고 올해는 아프간 군신탁기금이사회의 공동의장직을 수임하고 있다.


나는 지난달 파키스탄 정부와 유엔난민기구(UNHCR)가 공동 주최한 아프간 난민 관련 국제회의에 정부대표로 참석하면서 파키스탄과 아프간 접경 지역의 난민촌을 방문했다. 파키스탄에는 140만명의 아프간 난민이 체류 중이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 때부터 40년째 3대가 피란 생활을 하는 난민도 있다. 이들의 팍팍한 삶과 이들을 장기간 수용해온 파키스탄 국민들의 고충 모두 이해가 된다. 열악한 교실에서 학생 70명이 모여 수업하는 모습을 참관했다. 초등학교 3학년 소녀가 네 살배기 동생을 데리고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집에 동생을 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린 소녀의 얼굴에 벌써 삶의 고단함이 배어 있었다. 우리 국민들이 개인적으로 기부한 난민 성금 일부가 이들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우리의 아프간 재건 노력 동참은 인도적 차원을 넘어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미국의 아프간 안정화 노력에 기여함으로써 한·미관계가 강화되면 결국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미 공조로 연결된다. 고질적인 국제분쟁의 해결에 기여하는 것은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책임이기도 하다. 또한 실크로드가 지나는 길목이자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아프간에 대한 지원은 이 나라의 희망과 미래에 대한 투자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은 진부하지만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요즈음은 어쩐지 새롭게 다가온다.


<김영채 | 외교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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