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 | 전남과학대 교수·일문학
근로정신대 할머니 문제에 사과와 배상을 외면한 전범기업 미쓰비시에 대한 불매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협조하에 직접 미쓰비시를 상대로 광주지법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여기에 일본의 양심적 시민단체인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의 장기간에 걸친 각고의 지원이 있었음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에 강제노역을 당한 피해자와 지원모임 회원들 (경향신문DB)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는 2007년 여름 도쿄에서 첫 집회를 연 후, 2010년부터 나고야 중공업과 협상테이블에 앉은 기간을 제외하고 한 주도 빠짐없이 나고야와 도쿄를 오가며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진실을 알리고 피해자 보상을 위한 시민홍보에 전념했다. 이러한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의 활동이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힘이 되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아직 국내에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이런 양심적인 목소리는 지난 12일 일본 에히메현(愛媛縣) 의회에서도 들렸다. 에히메현 의원 아베 에쓰코가 의회 자민당 의원들이 내놓은 의견서와 결의안에 대해 반대 토론을 했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한국 대통령의 언동에 항의하는 의견서’ ‘중국에 거주하는 일본인, 일본계 기업 등의 보호와 우리나라의 영토, 주권 보호에 관한 결의안’에 대한 것이었다.
아베는 “(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가 아니라 군사력을 이용해 강제로 일본 영토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반대 토론 중 의원들로부터 거센 야유와 조소가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시민파 의원인 아베는 “일본이 패전 후 67년간 이들 역사를 반성하고 청산해오지 않은 점이야말로 근래 두 지역에서의 분쟁 이유”라며 “일본 정부가 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한국, 중국과의 우호적 해결을 위한 냉정하고 생산적인 대화의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하며 원고를 끝까지 낭독했다.
영유권 문제에 민족주의를 자극해 정치적 반사이익을 챙기려는 한·일 정부의 의도가 개재된 점을 부인할 수 없을 터인데, 역사적 진실을 가감없이 전하고, 한·일 공생을 위해 외치는 정의와 평화의 울림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인들의 활동은 어떠한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도 끊임없이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에는 ‘탈원전의 핵심을 묻는다’라는 인터뷰에서 “일본은 민족이 완전히 다른 타인이 소유한 국가를 불법으로 약탈해 자국 영토로 삼아버렸다” “일제 36년의 지배로 송두리째 나라를 빼앗긴 그들에게 있어서 독도는 이자와 같은 것이니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찍이 문호 나쓰메 소세키는 죽음의 해에 집필한 <점두록>에서 ‘과거’를 우리 자신을 비춰보는 탐조등으로 보고, 현재의 우리가 천지를 가리고 엄존하고 있는 확실한 사실을 지적한 적이 있는데, 오에가 추구하는 정신이 그러한 인식과 맞닿아 있는 것일까? 오에를 비롯한 평화헌법 9조를 수호하려는 ‘9조회’의 멤버 등이 주축이 되어 지난 9월 말 도쿄에서 시민 800여명의 서명으로 영유권 문제는 일본의 침략 역사에서 유래했다고 보고 일본 정부의 자성을 촉구한 호소문을 발표한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아베 신조의 우익 자민당정권 재등장 분위기 속에서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한·일 공생을 위해 끊임없이 자성의 목소리를 토해내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2004년 타계한 일본의 여류작가 마쓰다 도키코는 강제징용된 한국인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의 마음을 여러 작품에 새겼다. 그리고 일본이 국가주의와 폭압적 정치로 저지른 가해성을 스스로 성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강조했다. 그러한 숭고한 정신이 양심적 지식인들의 가슴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음을 우리는 소중한 연대의 자산으로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근로정신대 문제와 같은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도 해결의 더딤을 아쉬워하면서도 희망을 끈을 놓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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